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거리, 여기 한국 맞나요?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거리, 여기 한국 맞나요?
  • 이정윤 기자
  • 승인 2023.10.09
  • 호수 157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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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명동의 한 거리에 외국어 간판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외국어 간판이 도심 속에 즐비하고 있다. 실제로 200m 남짓의 명동 거리에는 상점 49곳의 간판이 외국어로만 표기돼 있었다. 심지어 한글 병기 없이 일본어로 간판을 구성한 가게 중엔 내부 메뉴판까지 일본어로만 작성된 경우도 존재한다.

불편함이 더 큰 외국어 간판
이처럼 일상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국어 간판은 손님들에게 불편을 준다. 간판은 가게의 전반적인 디자인이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게명이나 업종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외국어 간판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간판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없어 불편함을 겪는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처럼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외국어 간판을 통해 가게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더욱 어렵다. 50대 시민 A씨는 “딸을 만나기 위해 딸이 알려준  빵집을 찾아다녔지만 오랜 시간 찾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며 “알고 보니 가게 간판이 외국어로 돼 있어서 눈 앞에 두고 헤맸었다”고 불편했던 경험을 토로했다. 거기다 A씨가 찾은 가게는 메뉴판도 외국어로만 표기돼 있어 주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간판은 손님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으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명동에서 옷가게를 운영중인 B씨는 “가게 간판을 영어로 썼을 때 미관상 예쁘기도 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어 외국인 손님을 비롯해 더 많은 손님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어 간판이 매장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된단 것이다.

허점이 존재하는 옥외광고물 관리법
한편 외국어 간판의 사용은 처벌이 가능하지만,  예외 규정으로 인해 사실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진 않고 있다.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따르면 가게 외부의 간판은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국어로 표기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그러나 4층 이하에 설치되거나 크기가 5㎡ 이하인 간판은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단 예외 규정이 존재한다. 이 같은 예외 규정으로 인해 신고대상의 범위가 한정적이라 사실상 대부분의 외국어 간판이 처벌을 피해간단 문제가 생긴단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 C씨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간판인 경우가 많다”며 “생각보다 옥외광고물 관리법 기준에 해당하는 간판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단속 기준이 가진 허점 탓에 처벌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지자체 관계자 D씨는 “외국어 표기 간판이 불법인 건 맞으나 현장에서 단속할 땐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업종도 있고 상표 자체가 외국어로 표기되는 고유상표인 경우도 있어서 단속을 나서기는 하지만 외국어 간판만 한정해 단속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행 제도상의 문제로 옥외광고물법을 어겨도 확실한 처벌이 이뤄지긴 어렵단 것이다.

무분별한 외국어 간판을 막기 위해선
이에 일각에선 정확한 기준을 포함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프랑스에선 자국어 보호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법안인 ‘투봉법’이 시행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각종 광고 문구 △상가 간판 △제품명 등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를 어기는 경우 단속도 잘 되는 편이라 프랑스에선 외국어 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우리나라 역시 외국어 간판이라도 한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도록 확실하게 규제하거나, 한글이 더 돋보이도록 하는 정확한 기준이 생겨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제도를 통한 의무화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단 입장도 존재한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고, 한글을 외국어로 대체할 경우 심미적으로 더 나은 인상을 준단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단 것이다. 이 대표는 “외국어 사용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경우가 많다”며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고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국어 간판은 조형적 장점보다 이용의 불편을 더욱 크게 초래하고 있다. 한글문화를 보호하고 소비자들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선 과도한 외국어 표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도움: 강은영 기자 euten19@hanyang.ac.kr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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