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도 단식이 있다고요?...‘디지털 디톡스’를 소개합니다
디지털도 단식이 있다고요?...‘디지털 디톡스’를 소개합니다
  • 김연우 기자
  • 승인 2023.10.09
  • 호수 1572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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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하나 하자면, 기자는 300페이지 남짓한 책을 두 달째 읽고 있다. 처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을 땐 며칠 새 완독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부족한 기자의 집중력 탓에, 여태껏 여러 차례의 대출과 반납만을 반복하고 있다.

기자의 집중이 깨지는 순간마다 늘 함께한 공범이 있었으니, 바로 ‘전자기기’다. 문제는 이 유용한 전자기기들이 기자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중대한 역할을 맡는 바람에, 전자기기 없인 막연한 불안감을 만성적으로 느끼게 됐단 것이다. 메신저 알림 소리를 들으면 어떤 알림인지 확인하기 전까진 몸이 배배 꼬이고, 오래 알림이 울리지 않으면 ‘그래도 뭔가 왔을 것 같은데’ 하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현대사회는 이런 현상을 ‘인터넷 중독’이라 한다. 인터넷 중독은 컴퓨터나 인터넷 이용과 관련된 집착이나 충동적인 행동이 과도하고 조절되지 않는 것이다. 학업 및 업무와 관계없이 온라인상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과도하게 보내는 것이 대표 증상이다.

이미 만연한 인터넷 중독
인터넷 중독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은 23.6%로 나타나 지난 2014년 14.2%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아졌다. 이슬아<경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며 인터넷 중독이 점차 심화하는 양상이었다”며 “의사소통 환경이 비대면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인터넷 중독 현상이 증폭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자기기의 과다 사용은 도파민 과다분비로 이어져 신경회로를 파괴한다.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터넷 콘텐츠의 특성상 도파민이 지나치게 분비되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뇌의 신경회로 시스템이 고장 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 환경에서 제공되는 숏폼과 같은 콘텐츠들은 즉각적으로 즐거움과 쾌락을 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비해 더욱 쉽게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희진<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과도한 도파민 분비 상태가 지속되면 신체의 다양한 호르몬을 조절하는 뇌의 회로가 고장 나버려 몸의 전반적인 교감신경계와 내분비계가 모두 흐트러진다”며 “이는 인지 기능의 저하로까지 이어져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러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인들은 전자기기 사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두잇서베이가 10대 이상 남녀 1천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IT 기기가 주변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질문에 44.1%의 응답자가 긍정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IT 기기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이 어렵다’는 질문에 45.9%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통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김하늘<안산시 상록구 22> 씨는 “하루 평균 9시간 반가량 스마트폰을 만진다”며 “스마트폰이 주변에 없는 건 상상만 해도 불안해 항상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망가진 회로를 제자리로, 디지털 디톡스
최근 이런 인터넷 중독을 경계하는 움직임인 ‘디지털 디톡스’의 바람이 불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란 디지털(digital)과 해독을 뜻하는 디톡스(detox)의 결합어로, 전자기기 사용을 줄여 인터넷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일종의 휴식이다. 최근 「나 혼자 산다」에 디지털 디톡스가 소개되며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기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나 일정한 제한을 두고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람마다 설정하는 목표와 규칙에 따라 자유로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신경회로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경우엔 얼마간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뇌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진 교수는 “잠시동안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것은 뇌에게 휴지기를 주는 것”이라며 “이 시간동안 뇌가 망가진 신경회로를 정리하고 신경 전달물질도 정상화하는 등 회복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디지털 디톡스는 어떻게?
기자는 2가지 방법을 통해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다. 먼저 시도한 방법은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제한을 두는 것이다. 시중에는 △사용량 △시간제한 △타이머 등의 기능을 가진 여러 어플이 존재해 원하는 강도에 맞춰 이용할 수 있다.

기자의 경우 일부 어플에 사용 시간 제한을 두는 스마트폰 내 ‘스크린 타임’ 기능을 사용했다. 수업과 업무로 인해 전자기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선 △소셜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쇼핑 △배달 관련 어플에 사용 시간을 설정했다. 해당 시간이 초과될 시 자동으로 어플이 차단되는 스마트폰 내 자체 기능을 이용했는데, 어플 당 5분에서 30분까지의 사용 시간을 설정했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사흘 동안은 시간제한이 리셋되는 자정만 기다렸다. 자정이 되면 부리나케 소셜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어플에 접속해 허락된 시간을 다 쓰는 일을 반복했다. 어플이 차단된 나머지 시간엔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괜스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이처럼 혼자서 디지털 디톡스를 이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기자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공간을 찾아갔다. 서울시 내엔 여러 개의 디지털 디톡스 체험 공간이 있어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동안 다른 콘텐츠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중 강남구와 성동구에 위치한 체험 공간을 직접 찾아가 봤다. 우선 전자기기를 일체 사용할 수 없는 서울시 강남구 ㅇ카페를 방문했다.
 

▲ ㅇ카페에 있는 전자기기 반납함이다.
▲ ㅇ카페에 있는 전자기기 반납함이다.

카페의 디지털 디톡스 방침에 따라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를 반납해야 한다. 전자기기를 반납하고 나면 퇴장할 때까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열흘가량 디지털 디톡스를 진행 후 방문했기에 몇 시간 정도는 수월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나니 중요한 무언가를 잊은 것 같았고 책을 읽다가도 초조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어떠한 외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 두 시간 반 동안 250페이지가량의 책을 읽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서정원<서울시 종로구 27> 씨는 “스마트폰을 반납할 때는 불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시간도 빠르게 갔다”고 말했다.
 

▲ ㅇ카페에 있는 전자기기 반납함이다.
▲ ㅇ카페에 구비된 도서다.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 외에도 다른 콘텐츠를 제공해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ㄱ카페다. 이곳에선 전자기기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진 않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디지털 디톡스가 가능하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인 ‘나만의 서울숲 즐기기’에선 서울숲을 향해 난 통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선 책과 필사를 위한 필기구가 제공돼 스마트폰에 대한 갈망을 잠재우고 다른 것에 몰입할 수 있다. 매장에 근무하는 A씨는 “ㄱ카페는 도심 속 작은 숲과 같은 곳”이라며 “쉴 새 없는 도심 가운데 고요함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작은 숲 같은 공간으로 다가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 ㄱ카페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 ㄱ카페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기자는 2주가량의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하며 그간 필요치 않은 시간에도 전자기기에 의존해 있었단 걸 체감했다. 전자기기와 떨어져 있는 동안 느꼈던 세상과 단절된 기분은 기자가 전자기기를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디지털 디톡스를 일상적으로 이행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단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조혜미<덕성여대 경영학과 20> 씨는 “스마트폰을 자주 할 때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숙고하지 않게 돼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기존에 스마트폰을 하며 사용하던 에너지를 일상생활에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기기의 존재로 인해 현대인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편리함이란 커다란 장점 뒤엔 커다란 단점도 숨어있다. 이런 단점을 인정하고 디지털 중독을 인지 및 경계하며 사용하는 것, 그것이 전자기기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아닐까.


도움: 김희진<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이슬아<경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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