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 현대 속 그 시절 그 때
1주차 - 종로구 ‘바다극장’
종로구 예지동 222번지.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청계천 쪽 광장시장 뒤안길로 가면 ‘바다극장’이 있다. 아직 남아 있었다. 바다상가 3층에 위치한 이 극장에 대해 상가 직원 임승호(41) 씨는 “언제 생겼는지는 모른다”며 “여기서 일한 지 12년이 됐는데, 그 전부터 있었던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건물 밖. 상가 건물을 지붕삼아 노점을 여는 정순임(68) 씨도 “거기가 언제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여기에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바다극장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몇 남지 않은 재개봉 극장 중 하나다. 1970년대 초반 서울 시내에는 1백30여 개의 재개봉, 삼개봉 극장이 있었다. 당시 개봉관 수는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안종민(42) 씨는 “단속반에 걸릴까 무서워하면서도 그 시절 우리들은 재개봉관, 삼개봉관으로 몰래 들어가 낭만과 인생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바다극장은 ‘메가박스’, ‘CGV’ 등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여러 모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낙후된 시설에 교통이 불편한 위치 등 얼핏 비교해 봐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인다. 게다가 허름한 상영관 문 옆에는 ‘소매치기 조심’이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다. 극장 앞을 지나던 직장인 김 모 씨는 “극장에 오는 사람 중 변태가 몇 있어 여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극장 주인마저 “똥통 영화관에 뭐 볼 게 있냐”고 말한다.
그러나 재개봉 극장은 바쁜 생활 때문에 아깝게 놓친 영화를 언제든 저렴한 값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낭만과 철학’을 꿈꾸던 어르신들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대학시절 재개봉 극장을 자주 다녔다던 김종철<인문대·국문>교수는 “그 시절 이야기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살릴 수 있었던 공간”이라고 재개봉 극장을 회상했다. 또 오영숙<인문대·연극영화>교수는 “문화와 교류의 장이었던 곳이 시대에 흐름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재개봉 극장을 자본주의 논리로 본다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대학시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풋풋함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