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빛바랜 그곳엔 낭만이 있었다
작고 빛바랜 그곳엔 낭만이 있었다
  • 강동오 기자
  • 승인 2006.11.20
  • 호수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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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바다극장’

연재기획 - 현대 속 그 시절 그 때

1주차 - 종로구 ‘바다극장’

 

 종로구 예지동 222번지.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청계천 쪽 광장시장 뒤안길로 가면 ‘바다극장’이 있다. 아직 남아 있었다. 바다상가 3층에 위치한 이 극장에 대해 상가 직원 임승호(41) 씨는 “언제 생겼는지는 모른다”며 “여기서 일한 지 12년이 됐는데, 그 전부터 있었던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건물 밖. 상가 건물을 지붕삼아 노점을 여는 정순임(68) 씨도 “거기가 언제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여기에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바다극장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몇 남지 않은 재개봉 극장 중 하나다. 1970년대 초반 서울 시내에는 1백30여 개의 재개봉, 삼개봉 극장이 있었다. 당시 개봉관 수는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안종민(42) 씨는 “단속반에 걸릴까 무서워하면서도 그 시절 우리들은 재개봉관, 삼개봉관으로 몰래 들어가 낭만과 인생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닫힌 1층 상가의 셔터 앞에 걸려 있는 포스터가 오늘의 영화를 알리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3층 바다상가 내부의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났다. 바다극장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다시금 계단을 올라 바다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극장 입구다. 적당히 작은 크기의 화이트보드에 영화 상영시간이 손으로 쓰여 있다. 오늘 상영하는 영화는 「데이지」와 「각설탕」. 모두 개봉일과는 한참 먼 영화다. 요금은 일반 극장 요금의 반값 정도인 4천 원. 상영 영화는 1주일마다 바뀐다. 「데이지」를 보겠다고 하자 극장 주인은 구수한 어조로 “각설탕은 봤냐”고 물으며 “안 봤으면 계속 앉아 그냥 보면 된다”고 말했다. 4천 원에 영화 두 편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시간은 4시 15분, 영화 상영시간은 오후 6시 10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극장 주인은 “그냥 지금 들어가서 봐도 된다”고 말했다.

 

  2개 층으로 나누어진 상영관 옆 대기실에는 텔레비전과 함께 지나간 세월을 닮은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관객들은 편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영화가 보고 싶을 때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이 극장을 종종 찾는다는 임채옥(58) 씨는 “바다극장은 극장이 아닌 하나의 휴식 공간으로 보면 된다”며 “극장 안에서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영화를 관람하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극장은 ‘메가박스’, ‘CGV’ 등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여러 모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낙후된 시설에 교통이 불편한 위치 등 얼핏 비교해 봐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인다. 게다가 허름한 상영관 문 옆에는 ‘소매치기 조심’이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다. 극장 앞을 지나던 직장인 김 모 씨는 “극장에 오는 사람 중 변태가 몇 있어 여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극장 주인마저 “똥통 영화관에 뭐 볼 게 있냐”고 말한다.

 그러나 재개봉 극장은 바쁜 생활 때문에 아깝게 놓친 영화를 언제든 저렴한 값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낭만과 철학’을 꿈꾸던 어르신들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대학시절 재개봉 극장을 자주 다녔다던 김종철<인문대·국문>교수는 “그 시절 이야기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살릴 수 있었던 공간”이라고 재개봉 극장을 회상했다. 또 오영숙<인문대·연극영화>교수는 “문화와 교류의 장이었던 곳이 시대에 흐름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재개봉 극장을 자본주의 논리로 본다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대학시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풋풋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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