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사람들
밤의 사람들
  • 김여진 기자
  • 승인 2023.09.18
  • 호수 1571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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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A씨는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한다. A씨의 친구는 새벽에 배가 너무 아파 응급실에 다녀왔다며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말한다. 약속이 취소된 A씨는 산책하러 나간다. CCTV로 가득한 골목길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가자, 꽃집에서 예쁜 꽃을 팔고 있다. 부지런한 A씨의 기분 좋은 오전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흔히 아침형 인간만을 근면 성실한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밤새 으스스한 도시의 골목길을 지킨 사람은 누구였으며, 꽃집의 꽃은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고, A씨의 친구는 새벽에 누구에게 치료받았는가. 모두가 잠든 사이, 자신만의 근면·성실함으로 밤을 밝히는 네 사람을 만나봤다.

새벽에 가장 향기로운 곳, 새벽 꽃시장

밤 12시, 꽃 도매시장은 손님을 맞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각,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은 좋은 향기로 가득하다. 조금은 한산해진 새벽 3시경, 자신을 ‘꽃시장의 이 여사’라 불러달라던 한 꽃가게 상인을 만났다.

“저는 보통 시장 문 열기 한 시간 전인 오후 10시 반에 출근하고, 월수금은 낮 12시, 화목토는 오후 5시에 퇴근해요. 거래하고 있는 농장으로부터 낮에 꽃을 공급받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고 퇴근하거든요. 잠은 보통 출근 전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2~3시간 정도 자요. 그리고 다시 출근하는 거죠.” 적은 수면 시간에 피곤하진 않은지 묻자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서 이젠 몸이 어느 정도 적응했어요. 그래도 당연히 피곤하죠. 그럴 땐 쪽잠을 자거나,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마셔서 잠을 깨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씨가 일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따로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든 순간은 피곤할 때가 아니고 꽃이 잘 안 팔릴 때예요. 꽃이 잘 팔리면 하나도 안 피곤해요. 잠 깨는데 최고는 손님이에요.”

한편, 새벽의 꽃시장은 바쁘게 꽃을 다듬는 상인들과 이리저리 꽃을 살피는 손님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활발한 새벽의 모습이 조금 낯설다는 말에 이 씨는 “맞죠. 그런데 지금은 조금 한산해진 거고, 밤 12시쯤엔 다들 영업 준비하느라 훨씬 바빠서 아마 말도 못 걸었을 거예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가 가까워지면 손님이 이보다 훨씬 많아지죠.”라고 설명했다. 이른 아침도 아니고 이렇게 늦은 밤, 꽃시장이 열리는 이유는 하나다. “꽃은 생물이니까 싱싱할 때 보내야 꽃집도 좋은 상태로 판매할 수 있잖아요. 전날 낮에 농장으로부터 생화를 배달받아 여기서 새벽 내내 판매하고, 아침이 되면 도심에 있는 꽃집 사장님들도 이 꽃을 진열하는 거죠.”

손님이 많으면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던 이 씨는 인터뷰가 끝난 뒤 곧바로 일어나 분주히 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에도 이 씨는 지친 기색 없이 되레 기자에게 힘내라며 초코우유를 쥐여 주었다.

상점들도 문을 닫은 시간, 경비원의 발걸음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고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시간, 누군가의 걸음은 분주해진다. 늦은 밤 고속터미널 광장에서 들리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적막이 무섭던 차에 사뭇 반갑다. 밤새 고속터미널역을 지키는 순찰 경비원 B씨와 만나 그의 일상을 들어봤다.

“늦어도 오후 6시 반엔 출근해서, 오전 7시에 퇴근해요. 보통 1~3시간 정도 텀으로 돌아가면서 쉬는데, 휴게실에 침대도 있어서 쉴 때면 잠깐씩 잠을 자기도 하죠.” B씨의 업무는 단순히 고속터미널역 안을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다. “순찰하면서 확인해야 할 게 많아요. 각자 정해진 순찰 구역이 있어서 그 구역 안의 시설, 기물을 점검해요. 특히 여긴 상점들이 많다 보니 문은 잘 잠겼는지, 가스불은 꺼졌는지 확인도 해야 해요. 그리고 주취자나 노숙자 관리도 저희 업무예요.”

한편, B씨의 하루는 경비 일이 끝나고 퇴근한 후에도 계속된다. “퇴근 후에는 잠시 쉬고 점심쯤 다른 일을 하러 가요. 저는 현재 스리잡을 하고 있거든요. 사실 야간 경비원들 대부분이 다 그럴 거예요.” 힘들지는 않냐는 물음에 B씨는 감내하고 하는 일이라 괜찮지만, 이 일을 언제 그만둘지 항상 고민 중이라 답했다. “업무 자체는 힘들지 않아요. 다만 이 일만 하는 게 아니라서,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항상 하죠. 현실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따라주지 않으니까 쉽게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기자의 미숙한 인터뷰에도 웃으며 질문을 기다려 주던 그는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도 재차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힘들다는 그 흔한 말 한마디가 없던 B씨는 인터뷰가 끝나자 다시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불이 꺼지지 않는 병원, 나이트 킵 간호사

변아영 간호사는 밤 근무를 고정적으로 하는 ‘나이트 킵’ 간호사다. 환자가 생기는 시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기에 병원의 불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밤새 병원을 지키는 변 씨, 그녀의 일상을 들어봤다.

“출근은 오후 9시 반, 퇴근은 오전 8시 반 정도예요. 퇴근하면 바로 아이들 등교 도와주고, 이후엔 잠도 자고 제 시간 즐기다가 아이 하원 시간에 마중 나가요. 종종 약속도 나가고요.” 밤에 출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변 씨의 일상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간호사의 모습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지속적인 밤 근무가 힘들 것도 같단 기자의 말에 변 씨는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서 평소에 커피 대신 영양제를 먹으면서 건강 관리도 하고, 근무가 있는 날은 오후에 낮잠도 미리 자둬요.”라고 답했다. 다만 변 씨는 일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몸이 힘든 순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힘든 순간이라면, 출근하기 전에 아이가 아플 때예요. 나이트 킵은 대신 근무 서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제가 아픈 게 아닌 이상 근무를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밤새 오로지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하고 속상했어요.”

한편, 나이트 킵 간호사가 감수해야 할 게 또 있다. 바로 최소한의 의료 인력만이 상주하고 있는 야간의 응급상황이다. “대부분이 퇴근한 시간이다 보니 응급상황이 생겨도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 한단 부담이 있죠. 그래서 환자들을 더 자주 모니터링 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조금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되는 환자는 미리 간호사실 근처로 이동시켜서 더 자주 들여다봐요. 응급상황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상시 마음 준비를 해야 해요.” 

이처럼 나이트 킵 간호사의 근무는 낮 근무와는 다른 점이 많다. 어려울 법도 하지만, 간호사 변 씨는 나이트 킵의 장점이 그만큼 많다 설명한다. “나이트 킵은 3교대보다 쉬는 날이 많아요. 예전에 3교대 업무를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땐 제 시간을 가지는 게 힘들었어요. 쉬는 날도 많지 않았고, 퇴근하면 쉬기 바빴죠. 이젠 근무가 없는 낮 시간을 활용해 취미 활동이나 운동을 하고, 친구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가족들도 ‘너 오늘은 데이야, 나이트야?’ 같이 저의 근무 일정을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 업무 외의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편하고요. 내가 체력 관리만 잘할 수 있다면 좋은 점이 많아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퇴근 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는 그녀. 간호사로서도, 엄마로서도,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변아영 간호사의 이야기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CCTV 관제센터, 도시의 밤을 지킨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CCTV 관제 센터는 여전히 밝다. 24시간 도시의 사건 사고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기 위해서다. 밤이고 낮이고 도시의 안전을 지키는 시민들의 안심 파트너, CCTV 관제 센터 요원 C씨의 일상을 들어봤다.

“업무는 3교대로 오후 근무, 오전 근무, 그리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야간 근무 각각 이틀씩이에요. 그렇게 6일 연속해서 일하고 이틀 쉬는 형태예요.” 이런 근무 형태가 힘들진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C씨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야간에 잠이 올 때가 정말 힘들긴 하죠. 그럴 때는 일어서서 CCTV를 봐요. 그리고 야간 근무 전날은 하루 종일 쉬어요. 업무 자체가 감시다 보니, 졸음을 참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힘든 과제예요.”라고 설명했다.

한편 C씨가 근무하는 CCTV 관제센터는 바다 주변이다. “저희 구역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방파제를 특히 주시해서 봐요. 방파제에 사람이 올라갈 경우, 떨어져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혹여 올라가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관할 구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C씨의 감시 대상이다. “주취자 확인도 저희 업무예요. 보통은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다가 112에 신고하지만, 여성 주취자가 밖에서 잠든 경우 안전상 바로 112에 신고해요. 동절기엔 그게 누구든지 기다림 없이 바로 경찰을 부르고요.”

아찔한 순간도,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순간도 많았을 C씨에게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물었다. “한 번은 치매에 걸린 노인분이 오후에 실종되셔서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왔어요. 그러다가 새벽 한두 시에 혼자 배회하고 계신 걸 발견했는데, 마침 그 동네가 제가 사는 동네였어요. 덕분에 CCTV상 그분의 이동 동선을 더욱 쉽게 예측하고 빠르게 찾을 수 있었죠. 관제 일을 계속하려면 그 지역의 지리 정도는 익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고, 뿌듯했어요.”

C씨는 3교대 업무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하며 뿌듯한 순간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C씨는 오늘도 수많은 거리의 눈으로 도시를 지키고 있다.

세상엔 일찍 일어나 벌레를 잡는 새도, 늦게 일어나 벌레를 잡는 새도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바빴던 낮을 마무리하는 시간, 이들은 치열한 밤을 시작한다. 그리고 길었던 밤이 끝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세상은 그렇게 하루하루 굴러간다. 오늘도 각자의 시계에 맞춰 하루를 준비할, 모두의 낮과 밤이 안녕하길 기원해 본다. 


사진 제공: 변아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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