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벌금을 FLEX, 그냥 내버리면 되지
[장산곶매] 벌금을 FLEX, 그냥 내버리면 되지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09.18
  • 호수 1571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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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윤<편집국장>

“어린이집 설치하는 것보다 벌금이 더 싸” 유명 옷 브랜드 고위 임원의 발언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이는 저출산을 위한 정부 정책으로 직원 자녀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이다. 하지만 해당 브랜드는 어린이집 운영비보다 벌금이 저렴하다며 법을 어기려 한 것이다. 이런 기업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다년간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고 매년 억대 벌금을 내며 버티는 사업장도 있으며, 유명한 식품 배송 플랫폼도 이 같은 행위를 지속해 왔다. 

위 기사의 제목이었던 ‘벌금 내면 그만’이란 문구가 충격적으로 다가와 같은 문구로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매년 이와 관련한 많은 사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불법 영업 △불법 증축 △불법 하수 방류 △산업 재해 △임금 체불 △장애인 고용 등 다수의 행위를 벌금으로 무마하고 있던 것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0년 우리 학교 법인 한양학원이 장애인고용의무제도를 지키지 않아 21억 원이 넘는 부담금을 낸 바 있다(본지 1534호 01면). 사립대학 법인인 한양학원의 경우 상시근로자 수의 3.1%에 달하는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달성해야지만 우리 학교는 0.77%에 그치며 ‘장애인고용의무 불이행 기관 명단공표’에 이름을 올렸었다. 

이처럼 법 준수와 불법행위를 비교했을 때 많은 기업과 개인들은 후자가 이익이라 판단하고 있다. 지난 2021년 4번이나 적발되고도 여전히 영업하고 있는 유흥주점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아무리 여러 번 적발되더라도 현행법으론 300만 원의 벌금에 불과한 상황인 것이다. 그 이상의 매출을 내기에 약간의 벌금을 내면 영구적으로 영업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노동자 △육아 부담 △장애인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련 법들을 어겼을 경우 대부분이 벌금, 과태료의 처벌뿐이다. 또한 개인의 동물 학대, 음주운전 등의 경우에도 벌금형이 구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국민들은 처벌 강화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오랫동안 지속돼 왔기에 관련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바로 ‘소득·재산비례벌금제’이다. 핀란드와 같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벌금을 소득과 재산 등 경제력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을 말한다. 경제력에 따라 벌금형이 주는 처벌 효과가 다르므로 같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소득과 자산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매겨야 한다는 취지다. 많은 국민들이 현행 벌금 제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며 개정에 동의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21년 경기도민을 상대로 해당 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을 물어본 결과, 70%가량의 국민들이 찬성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권을 침해한단 주장이 존재하며, 찬반이 갈려 제도 개선으로까진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는 총액벌금제가 효과가 적단 점에서 재논의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벌금이 구형되는 경우가 70%인 몰카 범죄, 80%인 산업재해 등 반복되는 많은 문제들의 처벌이 ‘고작 약간의’ 벌금이기에 이 시점에서 현행 제도에 대한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벌금을 내니까 이런 행위를 하면 안 돼’라는 기본적인 생각이라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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