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순간의 여론보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사설] 한 순간의 여론보다 한 사람의 목숨을
  • 한대신문
  • 승인 2023.09.04
  • 호수 157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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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경북 예천의 수해 지원을 위해 동원된 해병대 소속 채 상병이 안전장비 없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구명조끼도 지급하지 않은 채 수색을 진행토록 한 해병대 간부진이 사병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심지어 군 당국은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뒤로 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이번 사고는 무리한 사병 동원과 지휘관의 부족한 안전 인식으로부터 기인했다. 전문성 없는 사병들을 동원하면서 안전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수난 구조 전문 인력을 관리하는 소방청에서도 ‘수난사고 대응절차’를 통해 안전장비 사용을 강조한다. 이처럼 전문성을 갖춘 기관조차 만일의 안전사고를 대비해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문적인 병사들을 동원할 것이었다면 더욱 안전에 신경써야 했다. 그러나 해병대 지휘부는 이러한 안전 수칙은 무시한 채 해병대 티셔츠가 잘 보이게 복장을 통일하고, 잠수복을 입을 땐 해병대 글씨가 보이도록 지퍼를 내리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겼다. 해병대는 비전문적인 병사들을 동원할 것이었다면 더욱 안전에 신경써야 했다. 이번 사태로 군대 내 허술한 안전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한편 국방부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외압을 행사했단 논란마저 존재한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으로부터 직접적 과실이 있는 해병대 제1사단장과 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시키란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만약 박 대령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사법권 침해다. 계급의 힘으로 책임 소재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혹에 따르면, 국방부는 박 대령이 이미 장관의 결재를 받은 채로 경찰에 이첩한 보고서를 공식적인 절차 없이 다시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가 장성급 간부들의 혐의를 삭제했단 것이다. 장관이 결재한 사안을 누군가가 비공식적으로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번복했다면, 이는 권력남용이라 판단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가 가장 주목할 점은 국방부에서 박 대령의 항명과 명예훼손 혐의를 문제 삼으며 교묘히 논점을 흐리고 있단 것이다.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 대령은 국방부에게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기소됐으며, 도리어 항명죄로 군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결국 국방부가 불투명한 수사 과정을 해명하는 것에 매도돼 정작 채 상병의 순직 사건은 논의 대상에서 밀려났다. 한 병사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이 장관이 군 당국의 총책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출발한 배가 국방부에 의해 되려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국방부에게 순직한 채 상병과 앞으로 수해 구조에 나갈 사병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국방부는 당장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진실공방을 멈춰야 한다. 명예롭게 국방을 수호하고자 국가의 부름을 받은 국군 장병들에게서 청춘의 빛을 빼앗는 일이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된다. 채 상병의 순직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더불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군 내 안전 규정을 개정하는 등의 실무적인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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