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보는 오발령, 국가는 오작동
[사설] 경보는 오발령, 국가는 오작동
  • 한대신문
  • 승인 2023.06.05
  • 호수 1568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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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서울 시민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서울특별시가 시내에 경계경보를 발령했기 때문이다. 이날 일부 지역에선 개인 통신기기뿐만 아니라 관공서 사이렌이 함께 가동돼 시민들의 혼란은 더욱 증폭됐다. 결국 행정안전부가 서울시의 경보를 정정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아직도 정치권에선 책임소재를 두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 서울시와 행안부 간 소통의 오류 때문이다. 서울시와 행안부는 지령방송 중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하란 내용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해당 지령의 해석에 있어 서울시가 경보 미수신 지역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맞서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느 측의 해석이 더 설득력 있는가가 아니다. 지지부진한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북한의 발사로부터 서울시의 경보는 무려 12분이나 늦게 발령됐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두 기관이 혼선을 빚는 사이 국민이 대규모로 희생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발송된 경보의 내용을 규정하는 지침의 부실함과 관계자들의 안일함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 규정」의 문안에 따라 경보 내용을 작성하는데, 이는 기본 문안을 상황에 맞게 수정한 뒤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경보 발생 이유나 가까운 피난처 안내 등 몹시 중요한 내용들이 빠져있는 해당 예시 양식을 행안부와 서울시가 그대로 ‘복붙’만 해 최종 발송했단 점이 문제다. 긴급 상황에 명확한 지시를 내려야 할 국가 기관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와 함께 북한의 사정권에 포함돼 있던 일본이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안내한 것과는 딴판이다. 이렇듯 부실한 행위지침과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한 결과는 시민들의 몫이었다. 이날 시민들은 가장 가까운 대피소를 직접 찾아보거나 정보 수집을 위해 먹통이 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등 혼란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이에 더해 경보 정정 이후 서울시와 행안부, 그리고 정치권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정치권에선 오발령을 놓고 국민을 챙기긴커녕 서로를 비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서울시와 행안부는 여전히 ‘오발령’과 ‘과잉 대응’을 놓고 입씨름 중이다. 소통이 부족하고 허점이 있던 경보 발령 체계에 관한 개선안을 내놓아도 모자란 상황에 책임소재에 대한 자존심 세우기가 중요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수장인 대통령마저도 다른 일정을 우선시해 NSC 회의에 불참하는 등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바로 전날 발사 계획을 발표한데다 역대 대통령 중 다수가 NSC 상임위를 주재했음에도 그런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본 국민들이 다음 재난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에 의지할 수 있을까.

서울시와 행안부는 서로에게 책임소재를 떠밀 것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허술한 위기관리 능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국가의 안보를 위해 책임의 주체들은 부디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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