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어느 작은 3차원 세계에 갇힌 사람들
[장산곶매] 어느 작은 3차원 세계에 갇힌 사람들
  • 이휘경
  • 승인 2022.11.21
  • 호수 1557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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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경 편집국장
                                               ▲이휘경<편집국장>

“어리석은 녀석, 미친 놈, 불규칙한 것 같으니!”

2차원의 그는 어느 이방인에게 이렇게 소리치며 발버둥 치다 3차원의 공간에 이끌려 들어선다. 평면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오각형 집 안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을 내려다본 그는 결국 탄성을 지른다. 평면의 세계에서 길이와 밝기로만 타인을 구분하던 그가 도형들의 모양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고, 높이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최근 일부 기후 활동가들의 잇따른 문화재 테러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문화론 특강을 수강하는 필자는 이 사태에 대해 더욱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무리 환경 보호에 있어 더딘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고 한들, 문화재를 인질로 삼는다는 것은 지금의 자신들을 있게 한 인류의 명맥 중 일부를 완전히 멸시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환경을 지키자며 다빈치와 고흐 작품에 케잌과 스프를 던져대는 행동 자체가 기후 활동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니 개탄스럽다.

한편, 이들의 과격한 명화 테러는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테러 집단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IS, 탈레반 등 극단적 종교 단체들이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미치광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나서가 아니다. 그들은 신을 형태화하는 우상숭배는 모두 이단이라며 문화재들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에 대해 살인까지 자행한다. 이들은 그 자체로 살아가면서 축적돼온 분노와 증오에 잘못된 믿음이 더해지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중을 떠나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가진 신념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반달리즘을 저지르고 있단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타인, 나아가 세상에 관철시키기 위해 케첩을 들고, 칼을 든다. 그 끝에는 흥건한 피와 토막난 직선, 해체된 구만이 남겨진다. 이들이 죽이고 있는 것은 ‘현재’에 있는 사람과 사물만이 아니다. 그들은 인류 전체에 있어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작은 구들부터 인류라는 거대한 구까지를 끊임없이 좀먹고 있다. 

인간은 각자 세상 안에서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자리해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나간다. 각자만의 초기값과 미정의 마침표를 가진 길고 긴 시간의 선들은 원자시계로 정한 1초의 촘촘한 간격으로 채워진 지구의 표준 시간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과거에 좀 더 가깝게, 미래에 좀 더 가깝게, 혹은 현재에 꼭 맞춘 채로 자리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고학을 통해 인류의 과거와 자신의 시간을 밀착시키고, 누군가는 미래로 향해가는 최전선에서 공학에 몸담으며 없던 것을 만들어댄다. 물체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각자의 부피로 다른 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시간 역시 자리한 곳이 달라 어디에 가치를 더 두고 살아가느냐 또한 자연히 차이가 나게 된다. 그렇기에 기후 활동가들에게 미래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듯, 어떤 사람들에겐 거장들의 작품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음에도 사람을 죽여대는 극단주의자들로 변질된 사람들과 유사한 논리를 품고 과격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드윈의 도서 「플랫랜드」에선 2차원 평면에서 살아가는 도형들이 나온다. 이들이 보는 것은 길이와 밝기가 전부다. 모든 도형은 선으로 보일 뿐이고, 멀리멀리 떨어져 희미해지면 그 도형은 없어진 것으로 본다. 3차원을 경험하고 온 ‘스퀘어씨’가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전파하려 들자 2차원 세상은 그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꼭 자신들만의 시선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극단적 행동을 취하는, 작은 3차원 세계에 갇혀 다른 시간의 축으로부터 온 4차원적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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