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란 무기, 사회적 가치와 규범 무너뜨려
인터넷이란 무기, 사회적 가치와 규범 무너뜨려
  • 한대신문
  • 승인 2006.10.31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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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사회대·사회> 강사
김본좌 신드롬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속칭 야동으로 불리는 일본포르노 음란물의 약 70%를 국내에 유통시켜온 김본좌란 인물이 구속되자 수많은 네티즌이 김본좌에 동조하는 의견의 댓글을 달기 시작하고, 나아가 김본좌의 무죄방면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법 위반이란 범죄적 인물에 대한 옹호라는 집단적 동조현상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가치전도적 행태를 보이는 네티즌의 이러한 집단적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김본좌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네티즌의 등장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성으로 인해 자신의 신분과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됨에 따라, 네티즌은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규범을 따르던 개인적 정체성의 탈을 벗어던지고, 동시에 자신을 억제해오던 사회적 통제력를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 감정적 충동과 일탈적 행위에 손쉽게 빠지게 된다. 즉 익명성은 개인에게 내면화된 사회적 통제를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갖게 되어, 사회적 인간을 동물적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인터넷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즉 김본좌가 구속되어 있는 경찰서 앞에서 어느 누구도 김본좌를 옹호하는 피켓을 들고 있지 않는 것은 익명성이 매개되지 않으면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거스르는 반규범적 행위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성의 매개와 더불어 김본좌 신드롬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사실은 인터넷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맥락이다. 인터넷은 사이버공간이라는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다른 사회적 공간이다. 사이버공간은 모든 인간이 ID라는 디지털 기호로 자신을 드러낸다. 익명적이라함은 오프공간에서의 자기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수동적 의미이지만, 가상공간에서의 ID란 익명성을 넘는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의미한다. 네티즌들은 사이버공간에서의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정체성을 형성시켜왔다. 이러한 자기정체성은 오프라인에서의 자기정체성과 일치할 수도, 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이버공간에서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사이버공간에서의 자기정체성은 인터넷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진다. 어느 포탈, 어느 카페, 어느 미니홈피와 어느 블로그에서 누구와 소통하느냐, 상대방이 어떤 반응으로 보이느냐에 따라 네티즌의 자기정체성이 결정되어진다. 즉 개인의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준거집단이 어떻게 설정되는가에 따라 개인의 행위지향은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김본좌 현상은 우리나라의 네티즌의 행위지향이 대부분 “또래집단”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사회적 물리적 연령과는 무관하게 또래집단을 준거집단으로 갖는 네티즌의 행위는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며 집단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또래집단은 놀이집단이기 때문이다.
네티즌에게 인터넷은 일상적 삶의 중요한 계기이자 공간이지만, 인터넷이 그들에게 “유희”로서 기능하는 한에 있어서만 그렇다. 인터넷의 모든 행위는 그들에게 단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김본좌에 대한 옹호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또래집단과의 집단적 놀이라는 의례(Ritual)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한번 집단적 자아를 확인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왜 안돼(Warum nicht)"라는 탈규범적 자기정당화에 기초하고 있다.
인터넷이 놀이공간으로, 또래적 유희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김본좌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똥녀에서 된장녀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 역시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네티즌의 집단적 놀이에 불과하다.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문제는 이러한 유희적 집단행동의 결과가 파괴적이라는데 있다. 오프라인공간에서 친구들의 협잡에 의한 집단적 따돌림이 왕따로 나타나, 한 개인을 파괴하는 것 역시 유희적 집단행동과 동일한 논리이다. 유희적 놀이는 항상 희생양을 요구하며, 유희적 놀이의 대상은 항상 약자이다. 김본좌 사건의 경우에 그 희생양은 사회적 가치와 규범이며, 개똥녀 및 된장녀의 경우에는 개인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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