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명절 갈등, 해마다 돌아오는 그 이름
[아고라] 명절 갈등, 해마다 돌아오는 그 이름
  • 전다인<문화부> 정기자
  • 승인 2019.09.23
  • 호수 150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전다인<문화부> 정기자

우리 민족 대명절 중 하나인 추석, 다들 어떻게 보냈는가. 명절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과 친목을 다지고 전통을 이어나가는 자리다. 하지만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치적 입장 차이에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불공평한 명절 노동 분담과 세대 간 주고받는 잔소리로 명절 풍경은 마냥 화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명절이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포털 사이트 뉴스 토픽에는 ‘명절 증후군’이 오르내린다.

지난 2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1천4명을 대상으로 ‘설 스트레스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9%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9.4%)는 ‘가족, 친지들의 듣기 싫은 말 때문에 명절 귀성이나 가족 모임을 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29.9%가 명절에 가족이나 친척과 다툰 경험이 있었으며, 상대는 △부모(41.7%, 복수 응답) △친척(38%) △형제·자매(23.7%)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명절 이후로 이혼 접수도 증가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다음 달에 접수된 이혼소송 건수는 3천374건으로 직전 달(2천616건)보다 29%나 증가한 수치였다.

사람들이 명절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잔소리’는 세대 갈등의 핵심이다. 명절이 아니면 잘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애정표현’이라며 이것저것 묻는다. △“결혼은 언제 하니” △“대학은 어디 쓸거니” △“취직은 했니”는 명절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들이다. ‘관심’을 핑계 삼아 묻는 이런 질문에 N포 세대는 그저 자신이 포기한 항목들을 곱씹어보며 절망에 빠질 뿐이다.  

잔소리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은 가족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종교가 달라 제사를 올릴지에 대한 언쟁이 빚어지기도 하고, 정치적 견해 차이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젠더 갈등 역시 명절 때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됐다.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SNS에는 명절에 겪은 성차별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는 글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절이 여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날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률이 88.8%에 달했다. 

명절의 핵심 가치는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화합하며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갈등으로 명절은 어느 순간 기피의 대상이 돼버렸다. 명절을 명절답게 즐길 방법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가사노동을 차별 없이 분담하고, 말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말은 피하는 것이다. 또한 관심을 빙자한 질문들도 상대를 배려해 유의해야 한다. 진정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면 안부를 핑계 삼아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다수가 피로에 시달리는 오늘날, 짧은 휴식처럼 주어지는 명절마저 스트레스에 시달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다음에 맞을 명절은 가족이 화합하는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길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