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움 문화로 고통 받는 간호사, 그들도 사람이다
[사설] 태움 문화로 고통 받는 간호사, 그들도 사람이다
  • 한대신문
  • 승인 2019.09.08
  • 호수 1499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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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故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원인이 ‘태움’이라고 발표했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핑계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지난 1월 ‘병원 직원에게는 조문도 받지 말라’는 내용의 서 간호사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태움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 후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서 간호사가 사망한 지 8개월, 대책위가 꾸려진 지 6개월 만에 그녀가 태움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책위에 따르면 서 간호사는 사망 전까지 개인 컴퓨터나 책상, 사물함 등의 사무용품을 지급받지 못했다. 또한 다른 동료 간호사들만큼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고, 지난해에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2배 이상의 야간 근무를 해야 했다. 그 외에도 서 간호사의 입사 동기들은 원하는 부서에 배치 받았지만 서 간호사만 원치 않는 부서로 강제 배치됐다.

태움이라는 악습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개선 대책의 주요 내용으로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간호사 태움 및 성희롱 등 인권침해 방지 △간호인력 확충과 전문성 강화 정책기반 조성 등이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간호대 입학 정원 확대 △경력 단절된 간호사를 위한 취업 교육센터 확충 △‘신규 간호사 교육·관리 가이드라인’ 제정 △주기적인 인권 침해 실태조사 실시 △3교대 근무 및 야간 근무에 대한 보상 강화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간호사의 처우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대책에 따르면 간호대 졸업생은 늘어나지만 정작 병원에서 채용 인원을 늘리지 않아 현직 간호사의 고충은 그대로다. 간호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개선안이 나왔지만 이미 대학 내 실습실이 부족해 열악한 환경에서 실습해야만 하는 간호대생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또한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늘면 병원은 ‘굳이 환경을 개선하지 않아도 일할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국민의당> 의원은 “임용대기자가 많아 한두 명이 그만둔다고 해도 병원 측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에 ‘힘들고 못 버티겠으면 나가라’는 식의 대우가 계속된다는 게 간호계 내부의 전언”이라고 밝혔다. 결정적으로 이 대책은 태움 문화에 대한 간호 사회 내 인식 개선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 대책은 태움 문화라는 악습을 극복하는데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간호사들은 화장실 갈 여유조차 없다고 토로한다. 태움 문화 근절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보건복지부는 간호사들의 실상을 반영한 대책을 제시하고 병원은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환자의 생명만큼 간호사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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