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여기 서로 다른 두 청문회가 있다
[장산곶매] 여기 서로 다른 두 청문회가 있다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9.02
  • 호수 149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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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편집국장
▲김종훈<편집국장>

청문회.

2019년 현재 이 단어를 듣게 되면 대다수의 사람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떠올릴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언론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물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조국힘내세요’와 ‘조국사퇴하세요’가 오르내리기도 할 만큼 조 후보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자녀 입시를 포함한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여러 의혹에 대해 사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는 늘 전쟁터였지만 이번 청문회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모든 관심이 인사청문회에 몰려있지만, 지난주 다른 청문회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다. 지난달 28일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1994년 가습기살균제가 처음으로 출시된 지 17년 후인 2011년, 비극이 시작됐다. 그해 5월부터 폐렴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갑작스레 늘었고, 그중 많은 수가 영유아, 임신부, 노인 같은 노약자였다.

폐렴 증세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료진은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3달이 지나고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발표됐다. 추정에서 확정으로 바뀐 건 3달이 더 지난 11월이다. 그 사이에도 가습기살균제는 시중에서 아무 제재도 없이 판매됐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왜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문회가 열리는 것일까. 8년 동안 기업은 책임이 없다며 회피하기 바빴다. 그동안 피해자인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은 허술한 조사로 기업에 빠져나갈 빌미를 제공했다.

기업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을 출시했고,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무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은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대학에 안전성 실험을 의뢰했다. 하지만 안전성 실험을 의뢰하기도 전에 이미 제품을 출시했다. 실험이 완료되고 나온 보고서에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내용이 있었고,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연구자 측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SK케미칼은 이를 외면했다.

기업뿐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까지도 제 역할을 못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지금까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4번이나 조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헛발질이 계속됐다. 특히 두 번째 조사 기간에 두 기업 관계자와 공정위 측이 만난 적이 있는데 기업 관계자 중 공정위에서 일했던 직원이 5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부정한 청탁이나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정위 측이 부담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최예용<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청문회에서 “공정위 퇴사자들이 두 회사에 취직해 공정위에 다시 찾아가 로비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헛발질이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고의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공정위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최근에 있었던 마지막 조사에서 기업 측이 공정위 내부문건을 확보한 정황까지 나와 최 부위원장의 주장이 과도한 추측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워졌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만 지난해 기준 1천 300명이 넘는다. 사망자를 넘어 피해자로 그 범위를 넓히면 6천 200명에 달한다. 피해자 판정 기준이 다소 엄격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까지 추산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무책임한 기업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 사이에서 8년째 이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청문회에서 기업 대표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구체적인 피해 보상 계획은 전혀 없었다.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마저도 8년 만의 첫 공식 사과다.

2019년 현재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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