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비판 수용력 잃은 사회, 중립국이 필요하다
[장산곶매] 비판 수용력 잃은 사회, 중립국이 필요하다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6.02
  • 호수 1497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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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편집국장
▲ 김종훈<편집국장>

수학은 학창시절 내내 필자를 괴롭혔다. 그래도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사칙연산은 간단했다. 곱셈과 나눗셈이 조금 성가시긴 했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계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오니 방정식을 배웠다. 수학책에 알파벳이 등장한 순간이다. 미지수 x만 등장하던 일차 방정식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y까지 나오는 이차 방정식부터는 꽤 까다로웠다. 생각해야 할 것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배운 삼차 방정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변수가 늘어나니 문제 푸는 것이 이보다 고역일 수가 없었다. 변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야 겨우 답을 구해낼 수 있었다. 변수 하나가 늘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가 느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았다.

우리 사회에는 수학 문제보다 변수가 훨씬 많다. 그렇기에 그 어떤 사회 현상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한다. 이분법과 흑백논리로는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분법은 만연해 있다.

우리나라는 늘 이분법적 갈등에 시달려왔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 단연 ‘좌파 대 우파’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좌파 우파 간 반목은 계속돼왔다. 현재에도 그 반목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임은 곧 우파의 적이고, ‘나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우파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처럼 쓰인다. 중간 지대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면 어느새 ‘적폐’로 치부되는가 하면,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종북’이나 ‘빨갱이’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다.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도 이런 반응 보인다면 건설적인 논의는 불가능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어지는 막말 논란을 보면 이런 갈등이 표면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극으로 나뉜 것은 정치에서의 좌우 갈등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여러 갈등이 있지만 최근 가장 뜨거운 것은 페미니즘과 그에 대한 비판으로 인한 갈등이다.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과 운동 전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은 어떤 이유 때문에 심화된 걸까. 

필자는 이 갈등도 이분법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 논쟁처럼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페미니즘이 기존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여성 인권의 신장을 외치며 시작했지만, 사회의 모든 문제를 성차별에 기반해 바라본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비판이 곧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님에도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해 힘든 분위기가 됐다. 페미니즘이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흘러가 버린다면 이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한국전쟁 중 포로수용소에서 남한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남한과 북한 측 장교는 서로 달콤한 말을 하며 자기 나라로 올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남한으로 가면 좌파, 빨갱이 취급을 받을 것이고, 북한으로 가도 아버지의 출신 때문에 숙청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명준은 제3의 선택지인 중립국을 택한다. 결국 중립국으로 이동하던 배에서 투신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말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있었던 제3국, 중립국에 대한 선택지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좌우 갈등과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을 비슷한 하나의 양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두 갈등 모두 사안에 대한 의견을 둘로만 나누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들에게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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