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완벽한 문장은 없다
[취재일기] 완벽한 문장은 없다
  • 정주엽<문화부> 부장
  • 승인 2019.06.02
  • 호수 149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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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엽문화부 정기자
▲ 정주엽<문화부> 부장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이같이 선언하며 소설을 시작한다. 학보사에 들어온 지 3학기가 지나, 어느덧 기자 생활의 막바지에 다다른 필자의 머릿속에도 이 문장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학보사에 들어온 후 스스로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던졌다. 그런 물음에 명료한 문장으로 대답할 순 없었지만, 생각의 끝엔 언제나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니까’라고 믿으며 어물쩍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런 믿음이 흔들렸던 적이 많았다. 글을 쓰는 매 순간, 스스로에 대해 온전히 확신했던 적이 없었다. ‘내가 쓰는 이 기사가 독자에게 무용한 것은 아닐지’, ‘지금 쓰는 이 문장이 진정 완벽한 문장인지’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신문사 동기 혹은 다른 학보사 기자의 유려한 글과 한 글자도 적어 내려가기 어려운 내 상황을 비교할 때는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럴 때마다 남에게 한대신문 기자라는 사실을 고백했던 일, 스스로 한 질문에 당당히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일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이런 감정에서 나오는 글들이 좋을 리 없음을 알면서도 막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들엔 주저했다. 쳇바퀴를 돌 듯 인터뷰와 녹취 풀기, 기사 작성을 하며 비슷한 일주일을 보내고, 매번 쓰는 단어와 표현을 반복하는 필자의 기사에는 생동감이 부족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사에 변화를 줘봤지만, 글을 다시 읽을 때면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나 느꼈던 어깨 결림이 눈에서 일어나는 듯 그 단어의 잔상을 오랫동안 지울 수 없었다. 틀에 박힌 문장과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스스로를 매너리즘에 빠진 ‘절망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그냥저냥 마지막 학기를 채우고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량만 채운 비겁한 글이 아닌 솔직하고 전달력 있는 기사를 한 번이라도 쓰고 싶었다. 이런 시기에 하루키의 문장을 만났다. 자신의 첫 소설 첫 문장에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하루키의 담대함이 그저 신기하고 부러웠다. 동시에 완벽한 문장만을 쫓으며, 매너리즘에 빠진 현재 상황을 완벽한 절망이라고 생각한 필자를 반성케 했다.

하루키가 정확히 어떤 의도에서 이 문장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문장이 필자의 태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완벽한 문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필자가 기꺼이 견딜 수 있는 일인 글쓰기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면 펜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말이 주는 신선함과 따뜻함에 집중했다. 완벽한 문장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편집증적 글쓰기’가 아니라, 내 주위에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들을 면밀하고도 섬세한 눈길로 관찰해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스물 하나의 절반쯤을 보내고 있는 필자는 한대신문과 성인이 되고 난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하루키의 문장이 말하듯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문장’이라는 함정 때문에, ‘완벽한 절망’에 빠지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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