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성차별' 없이는 못 하나요?
광고, '성차별' 없이는 못 하나요?
  • 오수정 기자
  • 승인 2019.05.26
  • 호수 1496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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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 마.”, “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 지난해 9월 공개된 국내 한 통신사 광고 문구다. 해당 광고는 가족끼리 스마트폰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됐지만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들은 걱정되는 아이로, 딸은 얄미운 자식으로 묘사하며 안쓰러운 아들과 이기적인 딸로 프레이밍 했다는 것이었다. 통신사는 논란이 불거지자 딸에 대한 광고 문구를 철회했다. 

위의 사례 외에도 국내에서는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광고가 여전히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서울YMCA와 함께 발표한 ‘2018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한 달간 TV와 인터넷 등에 방영된 국내 광고 457편 중 성차별적 광고 수는 총 36편으로 집계됐다. 이는 17편인 성 평등적 광고보다 두 배가량 많은 수다. 성차별적 광고의 경우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 △여성의 주체성 무시/남성 의존 성향 강조 △외모지상주의 조장 △여성의 성적 대상화/선정성 4가지 부분으로 나눠 조사됐으며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광고가 23편으로 가장 많았다. 또한 등장인물의 성별 역할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광고 속 주요 등장인물의 역할에 성 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제작된 다이슨 퓨어 쿨 자동정화 편 광고의 한 장면이다.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보여주는 광고로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반면 아빠와 아들은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광고에 해당한다.
▲지난해 제작된 다이슨 퓨어 쿨 자동정화 편 광고의 한 장면이다.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보여주는 광고로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반면 아빠와 아들은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광고에 해당한다.

조재영<청운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사회에 존재하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광고에 반영돼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가전제품, 식품 등에는 주로 여성이 주연 모델로 등장해 여성의 성 역할을 가사 및 육아 노동자로 한정 짓고 남성은 전문직 종사자로 그려 가정 밖의 노동자로 역할을 함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많은 광고에서 여성은 외모와 물질을 추구하는 인물로, 남성은 가족 및 사회의 발전을 책임지는 정신적 추구자로 표현된다”며 “이 과정에서 여성은 의존·감성적으로, 남성은 독립·이성적으로 묘사된다”고 덧붙였다.

성차별 광고에 대해 소비자는 해당 광고를 제작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부정적 의사 표현을 하며 맞서고 있다. 성차별적 요소가 담긴 광고라는 것이 알려지면 소비자가 기업에 항의하거나 SNS를 통해 이를 지적함으로써 기업에 광고를 철회하거나 사과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더 나아가 해당 기업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며 기업에 소비자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여경이<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성차별 광고에 대한 소비자의 강력한 대응이 기업의 광고를 내리게 하거나 재제작되게 할 수 있다”며 “불매운동과 같은 대응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에 상관없이 이것이 문제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차별 광고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성차별 광고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최상학<언정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사회에 아직 성차별적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광고는 사회의 거울이라 불릴 정도로 사회를 반영해 제작된다”며 “아직 사회에 성차별적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광고가 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나 광고주와 같이 광고 제작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 성차별적 인식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광고 제작 단계에서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성차별적 광고에 대한 규제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방송 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차별금지)에 따르면 ‘방송 광고는 △국가 △인종 △성 △연령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기준이 불분명해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조 교수는 “‘방송 광고 심의에 관한 규정’ 제4조는 ‘방송 광고는 방송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며 “여기서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포함돼 있지만 이 규정은 고정관념 차원의 ‘성차별적’ 표현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인격 모독에 가까운 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차별적 광고에 대한 규제가 없다기보다 ‘차별의 정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 페미니즘 운동 등으로 젠더감수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광고계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성차별 광고가 사라지기 위해서 소비자의 목소리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조 교수는 “소비자가 성차별 광고에 대해 기업에 내는 목소리가 성차별 광고를 사라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광고계 또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양성평등한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도움: 여경이<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조재영<청운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최상학<언정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사진 출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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