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으로 타임 슬립한 살롱 문화
21세기 한국으로 타임 슬립한 살롱 문화
  • 정주엽 기자
  • 승인 2019.05.12
  • 호수 149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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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살롱 문화’에 빠졌다. 살롱(Salon)은 프랑스어로 응접실 혹은 사교 집회를 의미하며, 17·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살롱은 사교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별, 신분의 차별 없이 대화와 토론을 나누며 지식을 향유하는 공간이었다. 예술과 문학의 산실이었던 살롱은 프랑스 문화의 번영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살롱 문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국에 등장한 살롱 문화는 △글쓰기 △영화 △요리 △인문학 등 다양한 취향을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는 형태를 띤다. 그중에서도 매달 책을 읽고 만나 토론을 하는 독서 모임 ‘트레바리’는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해 지난 3월 기준 280여 개의 독서모임, 4천600여 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외에도 ‘소셜 살롱, 문토’(이하 문토), ‘취향관’ 같은 다양한 살롱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살롱 문화만의 독특한 정체성
살롱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깊이 있는 취향의 공유다. 기존의 △동호회 △직장 내 소모임 △학교 동아리가 사교적 성향이 짙었다면 살롱 문화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탐구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앞선 집단과 차이가 있다. 각각 다르지만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선 일정액을 지불해야 하고 독후감을 쓰는 등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트레바리에 참여하고 있는 안나연<서울시 은평구 33> 씨는 “평소 독서를 좋아해 독서 모임을 하고 있었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참여도와 모임 지속성이 점점 떨어졌다”며 “이 살롱은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독후감을 써야 하는 만큼 모임이 의미 있게 흘러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트레바리는 전문 지식이 필요한 모임에 ‘클럽장’을 두고 있다. 교수와 작가부터 특정 기업 대표에 이르기까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모임에 함께 한다. 문토 역시 주제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리더’로 참여해 모임을 보다 풍성하게 꾸려나간다.  

살롱 문화의 주목할 만한 특징 세 번째는 바로 수평적 관계다. 17·18세기 프랑스의 살롱은 성별이나 신분의 구분 없는 자유로운 지적 토론장이었다. 현재 각광받고 있는 살롱 문화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살롱 모임에서는 △나이 △직장 △학력 등의 인적 사항을 말할 필요가 없다. 나이나 직업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위계적 구조의 의사소통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이미리<소셜 살롱, 문토> 대표는 “모임 첫 시간엔 나이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며 “서로의 이름에 ‘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서로를 존중하는 노력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살롱은 사회의 수직적인 분위기와 달리 수평적인 공간으로 운영된다.

살롱이 주목 받는 이유 
서비스 공급업자는 살롱 문화가 주목 받는 배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 대표는 “과거엔 직업인으로서의 자아만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흔했다”며 “그러나 달라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매개를 통해 자신 안에 숨겨진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일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더 이상 낯선 행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이 대표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내가 아는 정보를 어떻게 재가공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며 “살롱에 참여하면 공통의 취향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진 멤버들과 의견을 나누며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아가고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최근 살롱 문화가 부상하는 것을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는 “과거 우리나라는 집단으로 규정된 대인 관계 방식이 주를 이뤘다”며 “살롱 문화는 그런 집단적 기준을 배제한 채 보다 순수하게 관계 맺으려는 현대인에게 스스로의 온전한 정체성을 갖춰나가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우리 사회에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무리 짓기보다 타인과 취향이나 감성 자체를 공유하며 소통하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살롱 같은 새로운 문화의 등장은 우리의 모습을 집단적 정체성에서 개인적 정체성으로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성숙한 문화로 거듭나려면
이렇듯 주목을 받는 살롱 문화지만 한계도 동시에 지적된다.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유료 서비스라는 점이다. 이런 살롱 문화가 지금까지 다른 공동체와 차별화를 갖는 가장 큰 특징도 이것인데, 그 가격은 분기당 20~30만 원 정도로 상당히 비싸다. 이에 안 씨는 “직장인도 선뜻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서비스 플랫폼들은 ‘만족스러운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금액’이라고 설명하지만, 살롱 문화가 더욱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으로 확대되는데 비용이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살롱 문화의 확대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도 제기된다. △성수동 △연남동 △을지로 등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살롱과 같은 복합문화공간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정 평론가는 “살롱을 표방하는 특정 공간들이 성황을 이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며 “그러나 이는 살롱문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전반적인 현상이라 제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살롱 문화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에서 살롱 문화가 꽃 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들이 섞이며 다양성을 이뤘기 때문이었던 만큼 한국의 살롱도 모든 계층과 연령대에 열려있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살롱 문화를 통해 개개인들이 저마다의 취향을 긍정 받고, 다채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이 유입되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도움: 이미리<소셜 살롱, 문토> 대표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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