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앞에 작아지는 환자
의료분쟁 앞에 작아지는 환자
  • 한대신문
  • 승인 2019.05.06
  • 호수 1494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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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가 됐던 ‘분당 차병원 신생아 사망사고’는 의료진들이 의료사고를 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의료사고나 의료분쟁 관련 국민청원, 청와대 앞 1인 시위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의료분쟁 문제는 훨씬 전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한국의료분쟁중재조정원(이하 의료중재원)’의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은 5천여 건 가까이 접수됐다. 하지만 이 중 환자 측이 승소한 경우는 47건으로 고작 1%이다. 일부 의료과실을 인정받은 경우를 합쳐도 30%가 안 된다.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채 소송 취하나 기각된 경우는 그보다 많은 32%로 집계됐다.
 

간단치 않은 과실입증책임 문제
현행 제도에서 의료사고나 의료분쟁 발생시 ‘과실입증책임’이 환자에게 있다. 법적,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 측은 입증 책임을 밝히기 어렵다. 이인재<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의료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환자 측이 진료 기록을 열람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를 법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도 많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정혜승<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진료기록을 작성하는 측이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방어적으로 작성될 수 있다”며 “가끔 조작이 의심되더라도 이를 제대로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의료사고의 경우 환자가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피해보상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과실입증책임을 병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강태언<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진료기록을 작성, 보관, 수정하는 것은 병원 권한”이라며 “환자는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고 진료나 수술에 대한 설명만 들을 뿐인데 분쟁 발생 시 환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더불어 강 사무총장은 “감염 사고의 경우 병원의 과실을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다”며 “과실입증책임을 병원으로 전환하면 환자보호와 감염으로 인한 의료과실 예방이 되므로 감염으로 인한 의료과실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과실입증책임이라는 대원칙을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정 변호사는 “증명책임이 환자에게 있는 것은 민사법의 대원칙으로 의료사고 외에도 피해자가 피해 증명이 어려운 경우는 매우 많다”며 “증명책임을 전환하면 의료행위 중 당연히 수반되는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에까지 분쟁이 잦아져 의료기관이 과실 없음을 증명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될 것”이라며 과실입증책임을 바꾸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했다.
 

아쉬움이 남는 환자 지원책
현행 제도에서는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를 지원하는 수단이 미약하다. 의료분쟁 전문 조정기구인 의료중재원이 있지만 피해자가 조정신청을 한다고 바로 조정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의료사고로 사망했거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상태일 때,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의 동의가 없으면 조정절차를 시작할 수 없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조정개시율은 52%이다. 여전히 2건 중 1건은 의사나 병원의 거부 등의 이유로 조정을 시작도 못 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의 경우에는 강제 조정을 시작할 수 있다. 중재원과 다른 점은 강제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한다. 국회 입법 조사처는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비전문가인 환자 측이 의료인 과실 입증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강 사무총장은 “의료중재원이 분쟁을 해결, 해소하는 기구로 안착해 있는 게 현실적인 한계”라며 “일단 환자 피해를 구제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 병원에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묻는 구조가 돼야한다”며 “분쟁을 해소하는 개념이 아니라 완전하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환자를 위해 논의되는 방안들
현 상황에서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로 논의되는 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수술실 CCTV 도입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면 환자에게 사고가 생겼을 경우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의료인, 환자 보호와 사후 증거자료 확보 차원에서 대부분의 응급실에 CCTV를 설치하고 있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CCTV가 있으면 의무기록지나 진료기록부 조작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의료과실을 상당수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면 박종혁<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수술실 CCTV를 설치할 경우 의사가 방어 수술할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라며 우려했다.

두 번째로 국내 의료기관의 손해배상책임 의무보험 도입에 대한 주장이다. 이는 조정이나 소송이 이뤄져 환자 측에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와도 의료기관측의 보상 자력 부족으로 배상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장치이다. 현재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배상공제나 의사와 병원 배상책임보험을 자율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어 가입률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7년 11월 말 기준 의료배상책임보험의 가입률은 상급병원의 경우 10% 미만, 병·의원은 약 30% 수준이다. 상당수 의료기관의 배상 자력 확보가 미흡하다.

반면, 유럽 주요국,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의료인의 배상 자력 확보를 위해 의료배상책임보험의 가입이 법으로 의무화돼 있거나 의료윤리, 실무지침 등을 통해 강제하고 있다. 정성희<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의 신속하고 공정한 구제와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의료배상책임보험의 의무가입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또 다른 해결 방안으로 “의료중재원은 4개월 이내 감정을 통해서 의료사고원인을 분석해 주고 있지만,, 사건이 많이 밀려 점점 지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료사고 발생 시 협력의를 포함해 시민단체나 전문가 단체 등에서 가장 신속하게 사고원인을 규명해 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제적 취약계층이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소송구조사업을 위한 기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의료기관과 환자 가족 간의 원활한 소통도 필요하다. 정 변호사는 “의료인의 과실이 아니지만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는 환자들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며 단계마다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의료기관의 진료 문화가 조금 더 환자 중심적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환자들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에 앞서 말한 여러 대안들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춰진다면 의료분쟁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 측을 지원하는 여러 사회적 제도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강태언<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이인재<법무법인 우성> 변호사
정혜승<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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