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밖 공간’에서 전시를 보다
‘미술관 밖 공간’에서 전시를 보다
  • 우지훈 기자
  • 승인 2019.04.08
  • 호수 1492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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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미술관에만 있을까? 주된 전시공간인 미술관 밖에서는 어떻게 전시가 기획돼 열리고 있을까? 기존 제도권 미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대안공간부터 최근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는 신생공간까지, ‘미술관 밖 공간’에 대해 알아보자.
 

제도권 미술에 저항하다, 대안공간
대안공간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무언가로부터 ‘대안’을 지향하는 곳이다. 미술계에서 대안공간은 미술관 밖에서 작가들에게 비교적 자유로운 미술 창작 활동을 보장해 동시대 예술의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공간은 1960년대 말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처음으로 생겼다. 대안공간의 작가들은 예술품을 거래하는 갤러리와 미술관에 의해 지배되던 기존 제도권 예술의 장(場) 변두리에서 다양하고 독창적인 전시를 선보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제도권 미술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성소수자 △소수인종 △여성 등이 사회저항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예술 창작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에 대안공간이 등장한 건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 이후부터다. 당시 미술계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들을 주로 지원하면서 신인 발굴에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전시를 위해 갤러리에 지불해야 했던 비싼 대관료 역시 신인 작가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은 젊은 작가들의 감각을 수용하는 데에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고동연 미술평론가는 당시 상황에 대해 “IMF 경제위기로 인해 갤러리, 문화재단 등이 문화예술에 관한 지원을 줄이면서 신진 작가들이 전시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에 독일과 뉴욕 등지에서 유학을 했던 작가들이 하나둘 귀국했다. 또한, 젊은 작가들은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휘트니 비엔날레’의 서울전 개최로 동시대 미술의 국제 감각을 접했고, 홍대 앞 인디밴드, 거리 미술제 등 하위문화의 영향을 받아 각종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다. 고 평론가는 “1990년대 후반 생겨난 대안공간의 대표와 주요 큐레이터들은 서구 미술계에서의 유학 경험을 폐쇄적이었던 국내 미술계에 도입하고자 했다”며 “기존 기관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회화 이외 다양한 예술 장르를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이 이전 세대에 비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흔히 ‘1세대 대안공간’이라 불리는 △대안공간 루프 △사루비아다방 △쌈지스페이스 △아트스페이스 풀이 탄생했다. 덧붙여 양지윤<대안공간 루프> 디렉터는 “주류 미술계와 정치·사회제도에 대한 대안을 현대미술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안공간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대안공간은 상업갤러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으로 비영리성을 내세운다. 시장 수요만을 좇다 보면 신인 작가 발굴시 난관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대중성과 멀어 상업적이지 못한 작품들은 상업갤러리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로 인해 작가 개인이 대관 형식의 전시를 찾아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 이때 대안공간이 작가를 선정해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국제 교류전을 기획해 신인 작가들이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대안공간 루프’의 전시 전경이다. 양 디렉터는 다음 20년을 위해 “대안공간은 무엇이며, 시민들에게 열린 미술의 장으로서 어떻게 다가서면 좋을지 이야기 해보고 싶다”고 한다. 현재는 전시 「레스 개인전: 로우틴스타」가 열리고 있다.
▲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대안공간 루프’의 전시 전경이다. 양 디렉터는 다음 20년을 위해 “대안공간은 무엇이며, 시민들에게 열린 미술의 장으로서 어떻게 다가서면 좋을지 이야기 해보고 싶다”고 한다. 현재는 전시 「레스 개인전: 로우틴스타」가 열리고 있다.

 

대안 이후를 꿈꾸다, 신생공간
우후죽순 생겨났던 대안공간은 2000년대 말 재정 문제로 서서히 사라졌고 이제는 몇 곳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아있는 곳조차 스스로 ‘대안’이라 자부하던 특색이 제도권 내로 편입되면서 기존 상업갤러리나 미술관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됐다. 

공간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 대안공간에서나 다루던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실험적인 미술 장르가 국공립미술관이나 상업갤러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고 평론가에 따르면 “2010년대에 들어 국내 미술계는 현대미술 작가들을 후원하는 체계적인 국공립 지원 구조를 갖추게 돼 기존 대안공간이 하던 역할이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

2010년대 미술관 밖에 생겨난 전시공간은 대안공간이 아닌 신생공간이라 부른다. 여전히 전시를 위한 ‘공간’이긴 하지만 동시대 미술의 대안을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에 개관한 신생공간 ‘아마도예술공간’의 관계자는 “다른 대안공간들의 문제의식이 체화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명확한 그림 아래에서 공간 운영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며 “현재 고정된 정체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고 평론가는 신생공간의 지위에 관해 “어느 정도 현대미술 인프라와 전문적인 담론이 체계화됐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쥔 세대들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끝에 생겨났다”고 말했다. 신생공간은 대안공간이 지향했던 기존 미술 제도의 대안성보다는 작가로서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요구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 ‘아마도예술공간’의 전경이다. ‘아마도예술공간’ 관계자는 “최근 전시 공간 이외에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했다”며 “스크리닝, 퍼포먼스, 공연, 강연, 위크숍 등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수용·연구해 전시 이외 프로그램에도 힘을 싣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전시 「제6회 아마도전시기획상 ‘대나무숲의 아메바들’」이 열리고 있다.
▲ ‘아마도예술공간’의 전경이다. ‘아마도예술공간’ 관계자는 “최근 전시 공간 이외에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했다”며 “스크리닝, 퍼포먼스, 공연, 강연, 위크숍 등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수용·연구해 전시 이외 프로그램에도 힘을 싣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전시 「제6회 아마도전시기획상 ‘대나무숲의 아메바들’」이 열리고 있다.


‘공간’의 이상과 현실
미술관 밖 대안공간과 신생공간은 미술계의 다양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의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존재한다.

가장 큰 난관은 재정 충원의 어려움이다. 수많은 공간들이 유행처럼 생겨났다가 점점 사라졌는데, 그 원인은 재정상 어려움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면서 예술의 자율성만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한정된 기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공간들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 구조 속에서 도태된 공간은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아마도예술공간 관계자는 “기금에 의존하다 보니 내년 혹은 내후년의 계획을 미리 세우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다”며 “대안공간과 신생공간 모두 자생력을 가지고 운영하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단계이다”라 밝혔다. 

고 평론가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미술관 밖 공간들이 “작가 발굴뿐 아니라 기획에서도 다양한 모습과 실험을 모색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홍보와 우리 사회에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전시관련 이벤트 등을 통해 다양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간이 갖는 의미를 둘러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제도 내 미술관에서 미처 다뤄지지 못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밖 색다른 공간에서 보다 다양한 전시를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

도움: 고동연 미술평론가
양지윤<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신생공간 ‘아마도예술공간’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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