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깎듯, 소리를 조각하는 삶
나무를 깎듯, 소리를 조각하는 삶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9.03.25
  • 호수 1491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열<이성열 스트링랩> 대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지금 하던 것을 포기하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성열 동문은 본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IT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던 중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악기 제작을 배우러 유럽으로 떠난다. 이탈리아의 한 악기제작 학교를 졸업한 이 동문은 한국으로 돌아와 현악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악기제작콩쿠르에서 상까지 받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이 동문. 그가 조각하는 그만의 인생 2막이 듣고 싶다.

 

과학자를 꿈꾼 소년이 공대로
거의 모든 학생의 장래희망이 과학자이던 시절, 이성열 동문의 꿈도 과학자였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던 이 동문은 중학생 때부터 라디오나 오디오 같은 기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각종 전자부품 업체가 모여 있는 청계천 근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과학과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그는 우리 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다. “라디오 같은 것들을 만들면서 파동, 신호 같은 것에 호기심을 갖다보니 그 세계에 푹 빠졌어요. 그런 관심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져 자연스럽게 공대를 가게 된 것 같아요.”

그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누나의 영향으로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됐다. 이후 대학 생활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음반을 모을 정도로 이 동문은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밥 한 끼를 굶더라도 음반을 살 만큼 그는 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매일 듣다보니 문득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악기도 배웠다. “좋은 노래를 듣다 내가 저 소리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중에서도 첼로 소리가 너무 좋아 음대생 선생님을 만나 레슨을 받기도 했죠.”

대학 졸업 후에는 이 동문은 기업체에 들어가 꽤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했다. 19년간 반도체 회사와 슈퍼컴퓨터 회사에서 일한 그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꼈다.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다
직장 생활은 그의 적성에 맞았지만 오랜 회사 생활로 지쳐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을 하며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빈 종이를 꺼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를 써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소리’, ‘음악’, ‘악기’, ‘만들기’ 같은 단어가 눈에 띄게 많았고, 악기를 만드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악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동문은 정공법을 택했다. 악기를 만드는 공방을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여러 나라 중에서 현악기 제작에 있어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현악기 명장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출신이에요. 그 중에서도 ‘크레모나’라는 도시가 가장 유명해 그곳에서 악기 제작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어요.”

이탈리아 악기 제작 학교를 졸업한 그는 인근 공방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소문난 곳에 도제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칼슨&노이만 공방’이라는 공방이었다. “제가 졸업했을 때 그 공방에 자리가 없었어요. 당연히 들어갈 수 없었죠. 그곳에서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제 사정을 말하고 간곡히 부탁해 어렵게 허락을 받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도제 생활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그는 특별한 악기를 만든 경험을 이야기했다. 바로 1500년대에 명장이 제작한 비올라를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악기 제작 방법을 알게 된다. 이 동문이 지금까지 배운 방법은 좌우 대칭이나 본을 대고 장식을 그려넣는 것이었지만, 해당 명장의 악기는 ‘일필휘지‘로 문양을 새겨넣는 방식이었다. “그동안은 접하지 못한 방법이라서 처음에는 어색했죠. 일정한 패턴을 가진 악기와 달리 자연스런 문양을 가진 악기만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 이 동문(맨 오른쪽)이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악기 제작을 배우던 때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그는 악기 제작자인 교수로부터 악기 제작에 필요한 여러 공정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 이 동문(맨 오른쪽)이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악기 제작을 배우던 때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그는 악기 제작자인 교수로부터 악기 제작에 필요한 여러 공정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악기에 대한 ‘그’만의 철학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현악기 제작과 수리 공방 ‘이성열 스트링랩’을 오픈했다. 바로 개인 공방을 연 것에 대해 불안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불안했지만 진로를 바꾼 것이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함이었기에 괜찮았다며, 열심히 하다보면 느리지만 언젠가는 목표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 동문이 악기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사운드(Sound)’와 ‘플레이어빌리티(Playability)’다. 플레이어빌리티란 악기 연주자가 편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인지를 이르는 말이다. “어떤 악기는 소리는 좋은데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연주하기는 너무 좋은데 그에 비해 소리가 예쁘지 않은 경우도 있죠. 그 두 가지의 균형이 있는 악기를 만들려고 신경을 씁니다.”

그는 지난해 열린 ‘미텐발트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첼로부문 2위를 차지했다. 늘 최선을 다 해 악기를 만들어 왔는데, 현악기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어떤 반응인지 평가받을 기회를 가져보고 싶었다. “콩쿠르에 참가하려면 그곳까지 두 번이나 왕복해야 해요. 첫 번째는 악기를 출품하러, 두 번째는 악기를 찾아오러. 그 시간 동안 공방을 비워야 하니까 큰 결심을 하고 참여했죠. 아무래도 악기 만드는 것을 배운 곳과 떨어진 곳에서 오래 있다 보니 그간 내가 작업해 온 방식이 유럽의 제작가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지 확인 받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의외로 정해진 목표는 따로 없다고 말한다. 지난 15년간 처음 생각한 목표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다만 바람이 있다면 꾸준히 좋은 악기를 만들면서 연주자들이나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소박한 바람에서 악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소박한 바람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울지 모르는 그의 목표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 좋은 악기는 좋은 소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그는 악기를 만드는 일이 소리를 조각하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진 정주엽 기자 jooyup100@hanyang.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