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육·문화계 친일잔재
이제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육·문화계 친일잔재
  • 정주엽 기자
  • 승인 2019.03.04
  • 호수 1489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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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구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겨레가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3·1운동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3·1운동 정신의 계승 방법으로 ‘친일잔재 청산’이 가장 높은 비중(31.9%)을 차지했다. 결과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 속 친일잔재의 청산은 해방 74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는 중요한 현안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만연한 친일 잔재들
그러나 우리 사회 속 친일잔재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먼저, 교육계에서는 친일 행적이 있는 교육자들을 기리는 기념물로 인해 학생 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학교 본관 앞에 설치된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그는 총독부 기관지에 학도병 독려의 글을 쓰는 등 친일적 행보를 보인 인물로 고려대의 설립자다. 박성수<고려대 한국사학과 17> 씨는 “김성수 동상에는 그의 업적과 함께 친일행적을 자세히 기록해놓는 대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뿐 아니라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추계예대 등 많은 대학에서 친일 행보를 보인 인물을 동상 등의 기념물로 기리고 있다. 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엔 역부족이다.

한편, 친일 행위자와 관련된 문화재에서도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 민속문화재 22호 북촌 백인제 가옥은 아름다운 한옥으로 유명해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다. 현재는 백병원의 설립자인 백인제 선생의 이름을 땄지만 사실 가옥에 처음 거주한 사람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외조카로 ‘창씨개명’에 앞장선 친일파 ‘한상룡’이다. 하지만 그가 친일파였다는 설명은 가옥 주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밖에도 강원도 문화재 66호 ‘민성기’ 가옥, 서울시 민속문화재 12호 ‘윤웅렬’ 별장 등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과 관련된 문화재는 친일의 흔적을 숨기고 관광지로서의 모습만 부각하고 있다. ‘백인제’ 가옥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김지원<인문대 사학과 18> 씨는 “관광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해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
이렇듯 친일잔재가 만연함에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친일 행위자와 관련된 문화재에 대해 문화재청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로 지정한 것일 뿐”이라고 답하며 논란이 일었다. 친일적 행위가 담긴 문화재에 관해 이를 알리거나 소개하지 않는 것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등 역사 왜곡의 우려가 있다. 김덕영<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문화재와 해당 지역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자발적으로 친일 행위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친일 잔재에 더 이상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선 안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친일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입장차가 존재한다. 특히 친일 행위자의 업적과 그와 관련된 문화재가 모두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친일적 행위와 시대적 업적이 공존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강조하며 이들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이 저지른 친일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모든 역사적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친일 잔재’를 해결하기에 너무 단편적인 처방이 아니냐는 것이다. 임경석<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친일 관련 유산이라고 해서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친일 잔재 해결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러 의견들이 공존하는 만큼 친일 잔재의 해결을 위해선 적잖은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잊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노력’

충남 천안의 홍난파 기념비 앞에 세운 ‘홍난파 단죄문’의 모습이다.
▲ 충남 천안의 홍난파 기념비 앞에 세운 ‘홍난파 단죄문’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친일잔재의 해결을 위해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많이 논의되는 방안 중 하나가 ‘단죄문’ 설치다. 친일 행위자들의 기념물 주위에 친일 행적을 기록해 놓은 것이 바로 단죄문이다. 단죄문은 전국 곳곳에 위치한 친일 관련 기념물을 철거하기보다는 그들의 친일 행적을 자세히 서술해 후세에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단죄문은 △강원도 정선의 이범익 기념비 △충남 천안 홍난파 기념비 △충북 제천 반야월 기념비 등지에 설치되며 좋은 해결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친일 잔재에 대한 확실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월 광주시는 지역에 위치한 친일 잔재들을 폐기하거나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런 잔재물에 대해 광주시는 불명예스러운 역사가 담긴 현장이나 흔적을 보존해 후대에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네거티브 유산’과 이를 견학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획한 ‘다크투어리즘’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정부 및 지자체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친일잔재 청산 교육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친일 잔재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선 국민들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새로운 100년을 위해 우리의 눈길을 잠시만 과거로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 김덕영<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임경석<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사진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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