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슈터’ 벌드수흐, 농구라는 ‘꿈’을 던지다
‘슈퍼 슈터’ 벌드수흐, 농구라는 ‘꿈’을 던지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11.12
  • 호수 148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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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농구부 선수, 히시게 벌드수흐 씨

우리 학교 농구부에 ‘슈퍼 루키’가 등장했다. 바로 한양대의 ‘스테판 커리’를 꿈꾸는 히시게 벌드수흐<예체대 체육학과 18> 씨(이하 벌드수흐 씨). 몽골에서 귀화한 그는 한국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외국인이란 이유로 전국대회에서 뛰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9월 한양대 농구부에 입단했다. 슛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그. 최근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잠시 주춤한 한양대 농구부는 내년 시즌 ‘슈퍼 루키’ 벌드수흐와 함께 반등을 노린다.

▲ 한양대 농구부 선수 벌드수흐 씨의 모습이다.

낯선 땅, 한국으로 온 몽골 소년
‘초원의 나라’ 몽골. 벌드수흐 씨는 그곳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났다. 다른 몽골의 아이들처럼 스포츠를 좋아하고,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는 등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즐겼던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했던 종목은 ‘농구’다. “어렸을 때부터 농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빠르고 역동적인 점에 재미를 느꼈죠. 거기다가 형들도 농구를 좋아해 방과 후만 되면 동네 농구 코트를 찾아다녔어요.” 또래들과 즐겁게 농구를 하며 몽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2009년 돌연 낯선 땅 한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몽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2009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죠. 어린 저를 돌봐줄 사람이 몽골에 없어 어머니가 사는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벌드수흐 씨는 어린 시절부터 농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창원 사화초 농구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농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벌드수흐 씨는 빠르게 한국 사회에 녹아들었다. “첫 한 달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어려운 건 없었어요. 몽골에서처럼 수업을 열심히 듣고 친구들과 농구를 함께 하며 놀았죠. 처음엔 영어 위주로 소통했지만, 조금씩 한국어를 배워가며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어요.”

팀의 에이스, 무산된 전국대회 출전
벌드수흐 씨는 프로 선수들을 동경하며 농구선수라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가 농구부가 있는 창원 팔룡중으로 진학한 것 역시 ‘농구선수’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결정이었다. 농구부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실력이 일취월장한 그는 소속팀에서 핵심 선수로 인정받았다. 동료들과 관중들은 그의 플레이를 보며 ‘팔룡중 공격의 핵’이라 불렀다. 벌드수흐 씨의 장기는 정교한 중거리 슈팅. 그는 한 경기에 무려 41점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코트 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이처럼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던 벌드수흐 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벤치에도 앉지 못한 채 관중석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바라보기만 한 시간도 많았다고 한다. “전국소년체육대회는 가장 중요한 대회예요. 그러나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저는 규정상의 이유로 명단 등록조차 하지 못했죠. 동료들의 경기를 바라보며 그저 ‘뛰고 싶다’는 생각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와 같은 큰 경기를 못 뛴다는 것은 선수에게 치명적이다. 경기를 뛰지 못해 선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큰 대회에서 보여주는 경기력은 차후 진학에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벌드수흐 씨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마산고로 진학했다. 그만큼 그의 실력이 중학교 시절부터 특출났다는 뜻이다. 마산고 재학 당시에도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중요한 전국체육대회에 나서진 못했지만,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을 꾸준히 기록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농구연맹(KBL)에서 여는 ‘유스 엘리트 캠프’에 그가 참가한 것 역시 그가 이미 농구계에서 주목받는 유망주로 평가받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전국에서 총 40명의 유망주만 그 캠프에 참가할 수 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배우고 좋은 선수들과 재밌게 경기를 펼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 그의 롤모델은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다. 커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슈팅 능력만큼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이는 선수다. 벌드수흐 씨는 “아무리 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나는 계속 던진다”는 커리의 명언을 언급하며 “그의 강한 정신력을 닮고 싶다”고 했다.
▲ 그의 롤모델은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다. 커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슈팅 능력만큼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이는 선수다. 벌드수흐 씨는 “아무리 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나는 계속 던진다”는 커리의 명언을 언급하며 “그의 강한 정신력을 닮고 싶다”고 했다.

공격의 핵, 한양의 부름을 받다
그가 속했던 마산고와 한양대는 연습 경기를 통해 자주 맞붙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양대 농구부와의 경기를 많이 접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 학교 진학을 꿈꾸게 됐다고. 한양대 역시 벌드수흐 씨의 인상적인 슈팅 능력을 직접 관찰하며 그의 높은 잠재력을 확인했다. 벌드수흐 씨는 그를 눈 여겨본 한양대의 제안을 받고 지난 3월 본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규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귀화가 늦춰진 데다가 이로 인해 입학에 필요한 서류가 많아지며 입학이 좌절된 것이다. 벌드수흐 씨는 꿈에 그리던 대학 무대를 앞두고 한순간에 명단 등록조차 불가능한 선수가 됐다. “약 반년 동안 한양대에서 기본적인 훈련만 해왔어요. 중·고등학교 때 전국대회에 뛰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바라만 봤던 그때의 아쉬운 감정이 다시 차오르더라고요.” 

다행히 올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벌드수흐 씨는 지난 9월 본교 체육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귀화 관련 규정으로 인해 데뷔는 내년 시즌에 가능하지만, 그는 입학 자체가 기뻤다고 했다. “이전과 달리 기숙사 생활도 가능하고, 운동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이번 시즌 한양대 농구부는 리그에서 11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등 과거의 영광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벌드수흐 씨를 포함한 선수들의 절치부심은 필수적이다. 벌드수흐 씨도 훈련에 매진하며 다음 시즌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몸싸움과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훈련도 병행하는 중이다. 그는 “감독님과 팀 동료들과 다 같이 호흡을 맞춰 내년엔 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팬분들을 위해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리고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당찬 각오를 드러냈다.

내 꿈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구선수로서 벌드수흐 씨의 최종적인 꿈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이다. 비록 올해 막 귀화했지만, 벌드수흐 씨의 마음에는 이미 ‘대한민국이 자신의 조국’이란 생각이 자리 잡은 듯했다.

조금 투박하고 서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였지만 농구를 향한 열정은 이미 완성돼 보였다. 자신의 꿈이자 삶 그 자체인 농구를 위해 달려왔던 벌드수흐 씨가 본교 농구부에 입단하기까지는 분명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농구에 대한 애정과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그였기에, 수많은 ‘블록킹’을 뚫고 힘차게 그물망을 흔들 수 있었다. 머지않아 꿈에 그리던 올림픽체육관 코트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내뿜을 벌드수흐 씨. 내년 시즌 그가 코트 위에 아름답게 그려낼 수없이 많은 포물선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농구’, 그리고 그가 제일 사랑하는 존재인 ‘가족’은 벌드수흐 씨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인 대신 몽골어로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사진 강승아 수습기자 saaa216@hanyang.ac.kr
사진 제공: 벌드수흐 씨
사진 출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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