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조명 아래, 무대 위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녀의 조명 아래, 무대 위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11.05
  • 호수 1484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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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윤<스테이지워크스> 조명 디자이너

어둠만이 남아있는 무대. 그녀가 빛을 비추자 비로소 연극은 시작되고 관객들은 그 속에 빠져든다. 본교 연극영화학과(01) 출신의 최보윤 동문(이하 최 동문)은 무대 속 빛을 만들어 극을 완성하는 조명 디자이너다. 무대 속 조명처럼 밝은 에너지를 가진 최 동문. 연극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삶을 비춰봤다.

▲ 대학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최 동문의 모습이다.

20대의 최 동문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을 좋아했던 그녀는 연세대 천문대기과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준에서 배운 지구과학과 달리 지구의 모든 현상을 물리적인 법칙으로 해석하는 순수과학을 배우는 전공 수업은 큰 차이가 있었다. 마침 그 당시 고등학생 과외를 하며 수능 공부를 했던 최 동문은 새로운 진로를 찾기로 결심했다. 최 동문은 수능에 다시 응시해 기계전자공학부로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친하게 지냈어요. 어머니께서 컴퓨터 학원을 하셨거든요. 상도 받았을 정도로 잘 하기도 했고요. 계속 잘 해온 거니까 여기선 나한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막연하게 공부했었죠.” 

이제야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공학도의 길을 달려가던 최 동문. TV에서 우연히 접한 프로그램만으로 자신이 새로운 길을 다시 개척할 것이라곤 그녀 자신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우연히 TV에서 일본의 유명 가극 ‘다카라즈카’를 접했어요. 당시 일본어를 몰라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한 극의 분위기만으로도 그 극에 매료됐죠.” 그날 이후 최 동문은 다카라즈카의 열성팬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가장 좋아하던 배우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카라즈카 극단 소속의 배우는 퇴단한 이후로는 영원히 다카라즈카의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배우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최 동문은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의 공연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직접 다카라즈카의 공연을 본 게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공연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울기만 한 거 같아요. 저를 포함한 관객들 모두 그 배우가 마지막 공연을 한다는 사실에 슬퍼했기 때문이죠.” 

충격적이었던 그날의 공연을 경험한 이후 그녀의 마음 한켠에는 ‘연극’이라는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교 강의실이 극장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는 연극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제가 주로 수업을 듣던 곳이 계단식 대형 강의실이었어요. 그런데 공연을 본 이후로 연단이 무대처럼 보이고, 강의하시는 교수님 주변에 춤을 추는 배우들이 보이는 것 같았죠.” 

결국 그녀는 연극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수능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가슴이 벅찰 정도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녀의 인생에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최 동문의 나이는 25세. 누군가에겐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기엔 늦었다고 느껴질 수 있는 나이. 하지만 그녀는 인생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 생각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본교 연극영화학과에 26살의 늦깎이 나이로 입학했다.

무대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명의 매력에 빠지다
연극 연출의 경우 자신의 업무뿐만 아니라 연극의 모든 구성요소를 직접 경험하며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 역시 2학년 때까지 조연출, 무대 감독, 음향 등 해보지 않은 역할이 없을 정도였다. 

▲ 최 동문은 지난 1월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녀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존경하는 스승님이 이 상을 타셨을 때 꽃을 드리던 제가 직접 상을 받으니 너무 감격스럽고 감회가 새로웠어요.”

하지만 최 동문이 3학년 때 처음 접한 조명은 너무나도 힘든 분야였다. 조명은 여타 다른 분야처럼 극의 상황에 맞는 연출을 구상해야 하는 동시에, 기계를 다루는 일이 잦은 업무 특성상 기술적인 능력도 갖춰야 한다. 더군다나 연극의 시작과 끝도 결정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부담감도 극심하다. 그녀 역시 실습의 마지막 단계인 실제 공연 시작 전까지도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극의 시작을 알리는 첫 조명 버튼을 누르는 순간 최 동문은 그 모든 것이 해소되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 시작 전 무대는 어둡고 적막만이 흐르잖아요. 근데 그랬던 무대가 제가 누른 비춘 빛 하나로 무대 안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모습을 상황실에서 지켜보는데 정말 소름 끼쳤어요.”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조명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기본부터 배우자는 마음으로 조명을 가르쳐 주는 무대 연출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연극 연출팀 ‘스테이지워크스’를 결성하며 조명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연극과 연출이 돋보이도록
“조명은 각 작품마다 세계를 생성해요. 제가 비추는 빛에 따라 무대는 미국의 가정집, 혹은 상상 속 공간이 될 수도 있죠.” 조명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그녀는 이같이 답했다. 

최 동문은 자신의 미술적 감각을 뽐내기보다는, 작품이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언인지 초점을 맞춰 표현하려 한다. 최 동문은 자연스럽고 기본에 충실하게 조명을 디자인할 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극을 빛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관객들이 알아봐 줄 때 최 동문은 큰 뿌듯함을 느낀다. “한 번은 제 공연을 본 아이가 ‘이렇게 빛이 아름다운 건지 몰랐다’는 말을 했어요. 좋은 작품에 제 빛이 더해져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때 행복하죠.”

나 자신을 알 때 즐거움을 얻는다
만약 그녀가 대학 시절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연극인으로 새로운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현재의 조명 디자이너 최보윤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나를 알면 알수록 내 앞의 선택지가 좀 더 명확해지는 거거든요. 조명이라는 일도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던 거죠.” 

10여 년째 조명 디자인을 하고 있는 최 동문은 20대 시절부터 한결같이 이 일이 재밌기만 하다. 새로운 기계 콘솔이 들어오면 곧바로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그런 그녀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어봤다. “죽을 때까지 조명을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조명 일을 계속할 것 같아요. 왜냐고요? 조명을 할 때 가장 즐거우니까요!”

▲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최 동문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모토다. “놀 듯이 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사진 고다경 수습기자 dakyung304@hanyang.ac.kr
사진 제공: 최보윤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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