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손님, 투어리즘 포비아
초대받지 못한 손님, 투어리즘 포비아
  • 정주엽 기자
  • 승인 2018.10.15
  • 호수 1483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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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배낭여행을 떠난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관광객 수는 약 13억여 명으로 2000년 약 6억7천만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해 해외여행자 수가 2천600만 명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처럼 관광은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광객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에 불만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현수막과 북촌 지킴이의 모습이다.
▲ 오버투어리즘에 불만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현수막과 북촌 지킴이의 모습이다.

심각한 오버투어리즘, 원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베네치아의 인구는 5만 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관광객은 2천500만 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고 환경문제가 생기는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현상 때문에 유럽 일부 여행지에선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이훈<사회대 관광학부> 교수는 “이것이 지속되면 물가가 오르거나 인가받지 못한 숙박 시설들이 생겨나 주민 생활 자체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전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북촌과 제주도는 주민들이 관광객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투어리즘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양적 팽창에만 몰두한 관광 정책에 있다. 이 교수는 “관광지가 상업화되며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주민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관광 정책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관광 정책은 수준 높은 관광을 이룩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이 교수는 “현재 대다수 관광코스에서 관광지의 규칙이나 예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례로 북촌은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인데 이에 대한 사전 안내가 부족해 관광객들이 주민들의 공간을 침범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각국의 대책, 실효성 있나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자 각국의 정부는 대안책을 하나씩 내놓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논의되는 것이 바로 관광객 규제 정책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급증하는 관광객에 대처하기 위해 도심에서 숙박업소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관광버스 도심지 통행을 제한했다. 필리핀 보라카이 역시 6개월간 섬 출입을 금지하며 관광객 규제를 시행했다. 우리나라 북촌에서도 관광객이 평일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통행할 수 있는 관광허용시간제와 주민으로 구성된 북촌 지킴이 제도를 시행해 관광 규제에 나섰다. 이에 이 교수는 “주민들의 생활시간과 관광객의 관광시간을 분리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며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관광세 도입도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와 뉴질랜드에서 먼저 논의된 관광세 도입은 좋은 서비스와 인프라 구축을 통한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도 제주시가 처음으로 관광세의 일종인 ‘환경보전기여금’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 “관광세 도입은 오히려 관광지가 가진 경쟁력을 낮추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이 이 교수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관광지를 개발하고 이와 더불어 관광문화예절에 대한 체계적인 홍보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단순한 정책의 시행보다는 관광객과 주민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정책의 연구와 홍보가 필요할 것이다.

함께 만들어 가는 성숙한 관광문화
성숙한 관광문화 정착과 마을 주민을 위한 복지 향상도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꼽힌다. 특히 부산시 감천문화마을은 △마을환경 정비 △주민 환원사업 실시 △투어길 형성을 통한 주민 사생활 보호정책 등을 통해 관광객과 주민의 갈등을 봉합했다. 감천문화마을을 담당하는 정명국<사하구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황토색으로 투어길을 눈에 띄게 표시해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관광객의 동선을 분리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주무관은 “분류식 하수관로를 설치하고 관광 수익금을 마을의 복지 사업으로 환원하는 등 관광객을 통한 편익들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들도 감천문화마을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한 전예람<인문대 영어영문학과 18> 씨는 “감천문화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마을 안내 등의 관광 사업에 참여하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감천문화마을은 주민과 관광객이 상생하는 공정 관광의 사례로 발돋움했다.

우리는 모두 관광객의 입장일 때도, 관광객을 받는 거주민의 입장일 때도 있다. 이 교수는 “관광객은 자신이 방문할 지역을 미리 공부하는 자세가, 지역 주민은 관광객을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나 뜨내기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다양한 정책들이 효과를 보려면 공정한 관광을 약속하는 성숙한 관광 문화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도움: 이훈<사회대 관광학부> 교수
정명국<사하구 도시재생과> 주무관
강승아 수습기자 saaa216@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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