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장산곶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10.08
  • 호수 148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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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지난 5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2심 공판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됐다. 그는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면세점 특혜를 얻기 위해 국정농단의 공범인 최순실 씨가 운영하는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그 죄가 인정돼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230여 일간 법정구속을 당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원심을 깨고 신 회장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회장이 뇌물을 건넨 건 맞지만,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라 판단했다. 이에 피고인에게 엄한 책임을 묻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신 회장은 이날 바로 석방됐다.

이번 2심 재판부의 결정은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직접적인 사유였고, 유죄가 입증됐음에도 집행유예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1심의 판정이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신 회장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피해자’로 봤다는 이유에서인데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비해 너무 너그러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 1심의 판단처럼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선처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집행유예 판결이 많은 이들에게 지탄을 받는 이유는 사법부의 ‘재벌 봐주기’ 논란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사법부는 지금까지 재벌가 총수의 재판에서 부족한 수준의 판결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가 있다. 그는 올해 초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의 비슷한 인물이 비슷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의혹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신 회장처럼 대기업 경영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 집행유예를 받는 방식을 표현하는 ‘3·5법칙’이란 단어가 있을 정도다. 3·5법칙은 부패범죄를 저지른 기업 총수에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해 2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형법상 징역 3년 이하의 범죄만이 집행유예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법원은 여전히 재벌(범죄)에 관대한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재벌의 기업범죄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확률이 무려 72%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같은 기간 일반 경제 사범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그만큼 법원이 일반인에 비해 재벌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범죄 규모와 사안의 중대성은 재벌들의 범죄가 더 클 때가 많은데도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위와 같이 단지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면 어떤 이가 이 헌법 조항에 공감할 수 있을까. 현재의 모습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사법 신뢰도는 34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에 위치해 있다. 또한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발표한 법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34%에 그쳤다. 이는 △군대 △중앙부처 △경찰 등의 기관이 40%의 신뢰도를 얻은 거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그만큼 최근 사법부는 여러 구설에 오르며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법부는 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무조건적인 재벌 총수들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판결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언뜻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재벌 기업의 회장들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응한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거기다 과거 재벌들에 대한 ‘봐주기 관행’이 연상되는 교묘한 형벌 방식은 이들의 석방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에 실망을 안겨줬다.

재벌만 만나면 작아지는 사법부를 지지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사법부는 지금부터라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쇄신과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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