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교재 불법 복사·제본, 이게 최선입니까?
학내 교재 불법 복사·제본, 이게 최선입니까?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8.09.03
  • 호수 1480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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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학기 초가 되면 학생들은 수업에 필요한 교재를 준비한다. 김민규<자연대 수학과 17> 씨는 “교재는 주로 가까운 학교 서점에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학생 A씨는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교재를 구입하기도 하고, 복사실에서 제본한 것을 구입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다양한 경로로 교재를 마련하고 있다.

2015년에 진행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한 20대의 5명 중 1명(19.5%)은 제본을 통해 교재를 마련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한 20대의 83.5%가 책값이 비싸다고 답했고, 자연·이공계의 경우 11.0%가 전공서적 구매에 2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응답했다. 우리 학교 학생 B씨는 “가격대에 따라 교재가 2만 원 이내면 사는 편이고 그 이상이라면 부담이 커 제본한다”고 말했다. 교재 가격에 대한 부담이 제본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교재 복사·제본 중 많은 수는 학교 인근의 인쇄소와 교내 복사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A씨는 “교내에 있는 복사실에서 제본된 교재를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B씨 역시 “학교 앞에 있는 인쇄소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저작권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교재 복사·제본은 불법에 해당한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올해 2월 26일부터 3월 30일까지 주요 대학 인근의 복사업소와 인쇄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단속에서는 총 2억 7천만 원 규모의 불법 복제물이 적발됐다. 그러나 학생 중에서는 이런 교재 복사·제본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A씨는 “제본을 해본 적은 있지만, 불법일 수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교재 복사·제본 위법성 여부를 정리한 인포그래픽이다.
▲ 교재 복사·제본 위법성 여부를 정리한 인포그래픽이다.

이에 박성호<법학전문대학원 지적재산법전공>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법에 저촉되는 다섯 가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알아봤다. 첫 번째로 ‘인쇄소에 방문해 PDF 파일을 복사한 제본 교재를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해당 교재 권리자의 복제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교재를 가져가서 복사·제본을 하는 것’ 역시 대부분의 경우 불법이다. 학생이 해당 교재의 소유자이더라도 교재의 내용을 구성하는 저작물의 권리자는 아니기 때문에 이들 권리자의 허락 없이 교재를 복사해 제본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다. 단, 저작권법 제30조의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한다면 불법이 아니다. 이에 해당하려면 복사기 자체를 본인이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 복사해야 한다. 일반 복사점에서 복사·제본하는 것 자체는 권리자의 허락이 없는 한 모두 불법이다. 

세 번째로 ‘교재를 스캔해 PDF 파일로 만드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합법일 수도 있고 불법일 수도 있다. 합법인 경우는 교재를 구입해 보유하고 있는 학생이 교재를 PDF 파일로 전환한 다음 본인의 노트북에 담아 수업을 듣거나 공부하는 경우다. 즉 본인이 소유한 책을 PDF 파일로 만들어 혼자서만 이용하는 경우는 합법이다. 하지만 타인의 책을 빌려서 PDF 파일로 만드는 경우와 자신의 책을 PDF 파일로 만들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 PDF 파일을 제공하는 경우는 불법이다.

네 번째로 ‘교재 전부가 아닌 필요한 부분만 부분적으로 복사·제본하는 것’도 불법이다. 필요한 부분만 복사·제본했더라도 복사소나 인쇄소에서 그런 행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복사할 교재를 가져가서 복사·제본하는 것이 불법인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제본한 교재를 중고로 구입하는 것’도 불법이다. 구매자가 복제권 및 배포권 침해인 것을 알면서 중고 교재를 구입했다면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이 경우 교재가 불법으로 제본된 교재인 것을 학생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법에 저촉된다.

이처럼 학내에서 이뤄지는 교재 복사·제본의 대부분은 불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재의 가격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이 여전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고 교재를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설하거나, 교수들을 중심으로 저작권을 기부하는 운동 등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

북장터(www.campustalk.co.kr)는 대학교 전공서적을 할인된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는 사이트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학교 카테고리에 책을 등록해 학내에서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만나 사고파는 직거래 기반의 책 장터다. 우리 학교를 포함한 전국 4년제 150개 이상의 대학이 등록돼 있고 등록된 전공 서적은 1만 5천여 권이 넘는다. 또한 이 사이트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중개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이 나서는 사례도 있다. 바로 2010년부터 국내에서 시작된 빅북(Big Book) 운동이다. 이 운동은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교재의 저자인 교수들이 저작권을 기부해 무료로 교재를 보급하고 있다. 현재 40명이 넘는 교수가 참여 중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교재를 무료로 내려 받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교재 복사·제본 문제는 여전히 대학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재 가격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답이 교재를 불법적으로 복사·제본하는 것이 될 순 없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 역시 줄어들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학생들의 저작권에 대한 불감증이 계속 된다면 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사회적 차원에서 저작권에 관한 교양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며 저작권과 관련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박 교수는 “학생들 각자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시민 의식을 갖추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 황가현 기자 areyoukkkk@hanyang.ac.kr
도움: 박성호<법학전문대학원 지적재산법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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