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위 새로운 드라마를 쓰다, 야구감독 김기덕
마운드 위 새로운 드라마를 쓰다, 야구감독 김기덕
  • 임해은 기자
  • 승인 2018.05.28
  • 호수 1478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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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한양대 야구부 감독

우리 학교 야구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선수 시절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투수로 12년 동안 프로 무대에서 활약한 본교 영어교육학과(87) 출신의 김기덕 감독(이하 김 감독)은 지난해부터 한양대 야구부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소통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김 감독. 그가 살아온 야구 인생과 지도자로서의 포부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 봤다.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 감독의 모습이다.

우연, 어쩌면 운명
김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야구부를 들어가며 본격적인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그는 야구부 옆 공간에서 반 친구들과 종종 야구를 즐겼다. 어느 날 그는 학교 야구부 감독의 눈에 들게 됐고 야구부 입단을 제의 받게 된다. 단지 야구를 좋아하던 어린 아이의 야구 인생 ‘1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등번호 30’의 무게를 버티다
야구선수로 성장한 그는 고등학생 때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좋은 투수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찾아온 갑작스러운 무릎 통증으로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그의 야구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성장기에 닥쳐온 무릎 부상은 김 감독에게 치명적이었다. 이로 인해 투구폼이 변하며, 이전만큼의 구위를 되찾기 힘들었다. 결국 이는 대학 야구의 명문인 한양대에 진학해서도 그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줄 수 없었던 이유가 됐다.

이에 낙심해 프로팀에 대한 꿈을 접으려고 하던 찰나 김 감독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졌다. 실업 야구팀 입단이 예정된 상황에서 프로팀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막판에 지명받은 것이다. 내적인 갈등은 있었지만 그는 결국 프로 선수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부상으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4년간 묵혀둘 수밖에 없었던 야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지만 마운드는 그에게 쉽게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프로에 입단하고 3년간은 1군과 2군을 오가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김 감독. 그에게서 쉽지 않았던 선수 생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2군에 내려가니 밤에는 경기를 하지도 못하고, 수입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았어요. 마운드 안에서나 마운드 밖에서나 힘든 상황이 이어졌죠”라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일반 프로 선수들도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그라운드에서 김 감독은 자기 자신과 싸웠다.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공격적으로 달려들었어요.” 그렇게 그는 투수로서 느리지만 단단한 성장을 해나갔다.      

▲ 김 감독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생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이후 쌍방울이 해체될 때까지 투수로 활약했다. 

마운드 위 선수들의 아버지
본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김 감독은 2005년 코치가 돼 본교로 돌아왔다. 대학 선배인 천보성 감독으로부터 ‘한양대 코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SK와이번스’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던 김 감독은 과감하게 프로 리그 코치 생활을 포기하고 모교행을 택했다. 그는 “모교 지도자로 온다는 것은 제가 학교에 다닐 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코치로 부임한 초기에 최적의 지도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선수들이 제 후배라는 생각에 더욱 애정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훈련장에서만큼은 선배가 아닌 지도자이기에 압박하며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전한 김 감독. 당시 그는 선수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이 질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이런 지도 방식은 능률을 올리는 데 최적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감독이 된 그가 생각해낸 방식은 바로 ‘스스로 하는 훈련’이었다. 옛날 야구 선수들의 일상이 온통 야구였다면 그는 선수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도 보장해주고 있다. 선수들에게 경기장 밖에서는 자유를 누리게 해준 것이다. 강압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개인 시간을 즐기다가도 스스로 ‘이제는 훈련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 실력이 많이 늘거든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대개 과거의 감독들은 운동선수들에게 훈련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운동선수들에게 ‘훈련’뿐만 아니라 ‘삶의 자유’를 줌으로써 실력 성장과 더불어 운동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제자들이 어떤 선수가 됐으면 좋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꾸준한 선수”라고 답했다. 김 감독은 “지금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꾸준하게 자신의 실력을 길러나가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선수들이 운으로 뜬 ‘반짝 스타’가 아닌 끊임없이 파도에 쓸리고 모래에 긁히면서 스스로 자신의 빛을 만들어내는 진주 같은 인재가 되길 바라고 있다. 

▲ 김 감독은 "야구의 매력은 선수부터 코치, 감독까지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이에요"라고 전했다.

진주 같은 선수를 만들어내는 감독
투수에게 있어서 만루 상황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구종과 제구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고민이 끝난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 하지만 마운드를 떠난 그 공이 18.44m를 지나 홈플레이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승리를 확정짓는 세이브를 만들어낼지, 믿을 수 없는 끝내기 홈런을 맞을지.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공의 구속과 구종이 아니다. 바로 공을 던지는 투수의 마음이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결국 타자에게 공을 내어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씩씩하게 던지는 순간 타자를 압도할 수 있죠.” 이렇듯 어쩌면 그라운드 위 경기는 우리네 이야기를 담은 무대가 아닐까. 아버지같은 리더십으로 진주같은 선수들을 키워내고자 하는 김 감독. 그가 한양대 야구부와 만들어 낼 또다른 명승부를 기대한다. 

사진 이화랑 기자 ghkfkd0801@hanyang.ac.kr
도움: 정주엽 수습기자 jooyup100@hanyang.co.kr
사진 제공: 김기덕 야구감독
한양대학교 야구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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