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남북관계, 섣부른 판단보다는 냉철한 판단이 중요해
[장산곶매] 남북관계, 섣부른 판단보다는 냉철한 판단이 중요해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05.14
  • 호수 1477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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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지난달 27일 열린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장소부터 남달랐다.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남북 간 대립을 상징했던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처럼 보였던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남북 정상이 거리낌 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허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작 5cm 높이의 콘크리트 언덕이 ‘이념’이란 요소 하나 때문에, 지난 60여 년간 누구도 넘을 수 없었던 ‘통곡의 벽’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한민국의 땅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은 ‘합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장면이었다. 양국 정상이 비무장 지대 내 군사분계선 ‘도보다리’에서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정상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그들과 판문점 주변을 거닐던 새들만이 알 뿐이었다. 마치 동화를 보는 듯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연내 종전 선언·평화협정을 추진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긴 ‘판문점 선언’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4·27 회담 자체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회담이 너무나 극적이었던 이유 때문일까. 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폭발적이다. 마치 벌써 통일이라도 된 듯 앞서 나가는 이들의 낙관론과 이를 폄하하는 비관론이 공존한다. 물론 성공적이고 감동적이었던 회담이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게 사실이다. 벌써부터 남북 간 경제협력이나 군비감축을 논하기에는 이르다.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서로 약속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껄끄러운 적국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세간에 드러난 김 위원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세련돼 보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한 돌발적인 행동들을 생각하면 언제 국면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믿을 만한 인물일지 조금은 더 냉정하게 관찰하고 지켜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최근 일부 언론들이 ‘정상회담 특수’를 누리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일 후 연방제를 실시해야 할지, 어느 지역이 통일로 인한 부동산 특수를 누릴지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게 소모적인 일이다.

지난달 30일 KBS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80%의 국민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너무 나갔다. 단순히 남북 정상회담만으로 80%가 넘는 국민이 김정은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꾼 것은 마냥 웃고 넘기기엔 심각한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 와중에 철 지난 종북 프레임과 색깔론을 꺼내며, 남북 정상회담과 최근의 평화 국면에 대해 무작정 폄하하며 남북관계에 대해 비관론만 내세우는 세력도 아쉽기만 하다. 한 야당 대표는 이런 여론조사를 적절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냐며 또다시 지겨운 좌우 프레임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당대표와 거리를 두려고 하겠는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정세가 바뀌려고 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야당’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야당의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는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일단 분위기 자체는 좋다. 지난 9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했고, 억류된 미국인들이 석방됐다. 북미 양국 모두 회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국은 너무 긴 기간 동안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비핵화에 대해서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양국의 지도자 모두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편이라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

이런 한반도 정세 속에 최근 막 운전대를 잡은 한국 정부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북미 사이의 중재자로서 신중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향후 남북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북미 정상회담를 앞에 두고 남북관계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과 비관론을 내며 힘을 낭비하는 것보다, 냉철하게 어떠한 상황이든 대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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