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조심하라
[장산곶매]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조심하라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04.23
  • 호수 147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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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지난달 21일 여당 권리당원 3명이 *매크로를 사용해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 당시 단일팀 논란에 대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고 추천 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드루킹(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김 씨의 필명) 여론조작 사건’은 대통령의 최측근 현역 의원까지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 본질이 다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 일을 대하는 여당과 일부 지지자들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첫 번째로 소속 당원들의 혐의로 밝혀졌음에도,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이들의 태도는 국민들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소속 당원들이 댓글 조작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당은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온라인 미디어와 언론의 영향력이 거세지는 시대에 ‘댓글’은 여론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현재와 같이 고도화된 정보화 시대에서 ‘댓글’은 더 큰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보 과잉시대에서 댓글만큼 단순하고 접근성이 높은 콘텐츠가 어디 있겠는가. 기사를 읽기 전에 댓글을 먼저 읽는 시대다. 거기다가 높은 추천 수를 기록한 댓글의 경우 접근성이 극대화되는 ‘베스트 댓글’이 돼 마치 그것이 현실의 여론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이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댓글을 조작하는 행위는 이들이 여론을 통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 드루킹이 어느 정도 당내에서 영향력 있는 당원으로 밝혀진 상태에서,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조차 정치적 공세로만 몰아 무마하려는 것은 집권정당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번 댓글조작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보여준 모습과 태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모습이었다. 왜 수많은 국민들이 지난 정권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에 분노했는가. 선거에서 득표하기 위해 부정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드루킹 여론조작 역시 이와 부정하게 댓글을 조작했다는 본질은 같다. 물론 이번 사건과 그대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 현 사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고, 조작을 진행한 주체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만 따지면,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 정부가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드루킹의 여론조작이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본질부터 봐야 한다. 사건의 경중은 그다음이다. 그런데도 여당의 대표는 “국정원 댓글조작은 ‘새’, 드루킹 여론조작은 ‘파리’”라고 표현하며 은근히 사건의 경중을 가장 큰 판단 기준으로 두는 듯했다.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정권과 지지자들은 논란이 생길 때마다 지난 보수정권의 과오를 말하며,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유능하다는 논리로 본질을 자주 흐렸다. 최근 있었던 신임 금융감독위원장 사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신임 금융감독위원장의 의혹들에 대해 당시 모든 의원의 관행이었다는 논리로 옹호했다. 현 정부와 여당은 지난 정권과 관련된 대부분의 집단을 사실상 적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행과  평균적 도덕 기준을 언급하며 문제 인물을 옹호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였다.

적폐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당시의 관행이었든지, 보낸 댓글의 수가 적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자체가 낡고 병폐에 찌들어 우리 사회를 좀 먹는 행위라면, 설령 그것이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적폐가 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저들보다는 낫다는 유치한 논리로는 대중을 설득시킬 수 없다. 정권을 잡은 지도 1년이 지났다. 언제까지 남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이번 드루킹 여론조작 논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실제로 떳떳하고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관련 수사에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지난 18일자 ‘한겨레’의 만평인 ‘그림판’에서 인용하기도 했던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명언은 최근 여러모로 혼선을 겪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명심해야 할 부분을 잘 설명해준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또다시 괴물이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매크로: 여러 개의 명령어를 묶어 한 번의 클릭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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