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열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다, 민병철 특훈교수
끊임없는 열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다, 민병철 특훈교수
  • 임해은 기자
  • 승인 2018.04.16
  • 호수 147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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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삼고 싶었던 소년은 ‘국민 영어 선생님’이 됐다. 영어 선생님은 날카로운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따뜻한 말로 힘을 보태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댓글을 다는 ‘선플 운동’은 ‘국민 영어 선생님’이라 불리는 본교 민병철<국제학부> 특훈교수(이하 민 교수)에 의해 시작됐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을 통해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민 교수가 걸어온 길이 보였다. 세상에 긍정 에너지를 불어 넣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 민 교수가 한대신문과의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자신을 알리다 
대학생 시절 학비를 벌고자 강사 일을 시작한 민 교수는 ‘실생활 영어’를 내세운 남다른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이로 인해 그는 하루 15분 진행되는 KBS 영어 라디오를 진행하게 될 만큼 유명세를 얻었다. 민 교수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당시 ‘15분에 제 모든 것을 건다’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교민들을 위한 활동으로 한국문화원을 만들었다. 민 교수는 1979년 시카고 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 문화의 날’ 행사에 영어 사회를 맡았는데 MBC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된다. 그 결과 MBC 생활 라디오까지 진행하게 됐다.  

오랜 시간 민 교수의 열정을 눈여겨본 MBC는 그에게 TV 영어 강좌 방송의 진행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방송 경험이 없던 그는 힘들 것 같다며 거절했지만, 제작진의 오랜 설득 끝에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1980년대 MBC ‘민병철의 생활영어’를 진행하며 약 10여 년 동안 아침 영어 방송을 책임졌다. “당시 제가 대본도 직접 쓰면서 방송을 준비했어요. 손수 쓴 대본을 수십 번씩 연습하고 달달 외워서 촬영할 정도로 이 일에 매진했던 것 같아요.” 그 결과 그는 ‘국민 영어 선생님’이란 호칭을 얻게 됐다. 이 시간을 통해 민 교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많은 훈련과 노력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선플, 단순한 언어를 넘어 
민 교수는 ‘국민 영어 선생님’ 외에도 ‘선플 운동의 선구자’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7년 우연히 ‘유니’라는 가수가 악플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 악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됐어요. 그제서야 언어의 폭력성을 실감한 거죠.” 민 교수는 댓글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학생들에게도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학생들에게 악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댓글을 10개씩 작성하라는 과제를 내줬다. 

▲ 2012년 6월 16일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 만들기’ 주간을 맞아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에서 ‘선플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는 선한 댓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선플’이라는 대표 단어를 만들게 된다. “‘선플’이라는 단어는 착한 인터넷 댓글이라는 뜻 외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밝힌 그는 단순히 인터넷상에 실리는 선한 댓글만이 선플의 의미는 아니라고 전했다. 나아가 선한 댓글 작성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자 ‘선플 운동 본부’라는 단체를 설립하게 된다. 

민 교수는 악플을 ‘언어의 핵폭탄’이라고 표현했다. 핵폭탄이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쓴 글은 때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플 운동 본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런 무기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인터넷상에서의 바른 언어 사용에만 주의할 것이 아니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의 전달되는 언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선한 언어를 쓸 수 있도록 하고자 선플 걷기 대회, 악플의 폐해를 알리는 미술 전시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결과 현재 선플 운동에 67만 명이 참여하고, 700만 개의 선플 댓글이 세상에 만들어졌다. 어쩌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댓글이 민 교수로 인해, 그와 함께 하는 67만 명의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 힘이 되는 글로 생겨난 것이다.

▲ 작년 12월 선플 운동 본부는 ‘제5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민 교수는 “청소년 SNS기자단 학생들이 직접 선플을 실천하는 국회의원들을 선정하였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꿈에 연결고리가 되다 
민 교수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에서 선플 운동 본부를 이끌어가는 ‘이사장’으로, 마침내 본교 국제학부 특훈교수까지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글로벌 인재 양성에 앞장서는 임무를 맡게 된 그는 ‘내 열정을 창업으로’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민 교수는 학생들이 만든 아이디어에 대한 발표를 듣고 학생과 실제 산업 현장, 기업 등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의 생각에서 그칠 수 있었던 아이디어를 세상에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일하지 마.” 이는 특강의 핵심 문구이다. 내용을 처음 접했던 기자는 뜻밖의 문구에 적잖이 놀랐었다. 민 교수는 기자에 반응에 웃으며 단순히 문장 그대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며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뜻을 담고 있음을 전했다. 그는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을 단순하게 일이라고 생각하고 임한다면 그것은 노동이 된다. 하지만 일을 즐긴다면 그것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누군가는 일을 통해 도전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당일, 민 교수의 연구실로 제자들이 방문했다. 그들에게 10월에 있을 행사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함께 준비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는 민 교수의 눈빛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자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역할을 지치지 않고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그의 열정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넘어 사회에도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열정과 하나 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휘된 것이다.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 언어를 이루듯이, 그의 선한 행위와 선한 마음이 모여 수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뤄냈다. 이는 언제나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배려와 위로가 대본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민 교수. 이제는 우리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될 차례이다. 

▲ 민 교수는 현재까지도 여러 위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열정과 배려’라고 답했다. 앞으로도 그가 보여줄 선한 영향력에는 무엇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사진 이지윤 수습기자 kelly0125@hanyang.ac.kr
사진 제공: 민병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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