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산도화’ 버는 언덕에서
[교수칼럼] ‘산도화’ 버는 언덕에서
  • 안계명<사범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8.04.02
  • 호수 147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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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계명<사범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행당 캠퍼스 인문대학에서 ‘한마당’에 이르는 ‘158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첫 번째 굽이에 박목월 선생의 시비 ‘산도화’가 서 있다. ‘한양8경’의 두 번째인데, 이 시비는 “한양 인문정신”의 상징으로 소개된다. 그 한양 인문정신이란, 인문과학대학이 천명하듯이, “역사, 사회, 문화를 꿰뚫어 보는 비판적 사고능력과 통찰력을 키워 인간의 기본적인 문화사상과 이에 따르는 제반 현상을 연구”하고,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인류문화 창조에 도전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인을 양성”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 ‘산도화’가 저 한양 인문정신을 나타낸다는 것일까? 필자는 1995년부터 봉직을 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양대학을 참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행당 캠퍼스의 이모저모에 눈길을 돌리고 사진을 찍고 하던 중 이 시(비)를 진지하게 마주 대하였다.

산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맨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 ‘산도화’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화였다. 멀리 산이 서 있고 때는 4월 정도일까? 복숭아꽃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직 고지에는 눈이 좀 남아 있는지, 그 눈이 녹아서 푸르스름하기까지 한 깨끗한 물이 흘러오고 있다. 생명을 깨워내는 물이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사슴, 그것도 생명 잉태의 암사슴이 이미 목은 축였는지 이제 발을 씻고 있다. 

 이 시는 목월 선생이 <청록집> 이후 1955년에 발간하신 첫 개인 시집에 실려 있었고 또 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목월 선생이 많은 의미를 부여하신 시였던 것만은 분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어떤 의미에서 그리 ‘특별’하단 말인가? 어느 날 시를 전공하신 국어교육과의 J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여전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J 교수는 이 시비가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고 한다. 우선 드물게도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둘째, 시 뿐 아니라, 뒷면의 해설 텍스트가 명문이며, 새긴 음각이 멋진 작품이다. 그러면서 시 해설로 들어가지 않고 J 교수는 자기 같았으면 이 주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꽃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주위에 이미 복숭아나무가 ‘두어’ 그루 심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벚꽃보다 살짝 일찍 피는 복숭아꽃은 그 짙은 분홍 색감으로 인하여 봄 생명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그 돌 시비에 생기를 불어 넣곤 하였다. 그러자 비로소 J 교수는 그 시비가 어떤 모양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조금 승강이하다가 그것이 사슴, 특히 암사슴 모양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 이르렀다. 그럼 반질반질한 시단(詩壇)은 “옥 같은 물”이 아니겠는가? 목월의 제자들은 그곳에 산도화 암사슴이 있고, 옥 같은 물이 흐르게 하였다. 그렇다면 구강산은 어딜까? 아홉 개의 강이 흘러나오는 이상향, 한양 캠퍼스 자체가 구강산이란 말이 아닌가! ‘아홉’은 많음을 의미한다. 얼마나 많은 전공에서, 얼마나 많은 맑은 정신이, 학생들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의 잠자는 생명을 깨워낼 ‘옥 같은 물’, 사랑의 실천자들이 될 것이었다. 목월 선생도 훌륭하지만, 이러한 시적 상상력을 발휘한 그 제자들의 ‘한양 인문정신’이라니! 이 구강산에 산도화 두어 송이송이 항상 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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