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 Too # With You
# Me Too # With You
  • 정서윤 기자
  • 승인 2018.03.05
  • 호수 1471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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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은 지난해 10월, 미국 여배우들이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고발하며 사용한 ‘#MeToo(나도 당했다)’라는 해시태그에서 시작됐다. 미국 전역을 휩쓴 ‘미투 운동’이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에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내 미투 운동의 시발점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조직 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폭로하면서부터다. 이후 연극 연출가 이윤택을 시작으로 시인 고은,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SNS를 통해 퍼지며 문화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미투, 침묵의 알을 깨고 나오다
문화계 성 추문에 대한 폭로는 이미 2년 전부터 움직임을 보였다. 바로 2016년 10월 중순 문학계를 강타한 성 추문 폭로 사건인데, SNS에서는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과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당시 책 「은교」의 박범신 작가와 수필집 작업을 했다는 전직 출판 편집자가 트위터에 박범신 작가의 성추행 폭로글을 올려 파문을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각종 언론과 시민단체는 ‘암암리에 묵인돼온 문화계 성 추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당시 문단 내 성 추문 폭로 사건은 현재 문화계 미투 운동만큼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이진 못했다. 그 이유로는 문단 내 성 추문 폭로 사건과 현재 문화계 미투 운동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SNS에 올라온 고발 글은 가해자의 실명보다는 주로 초성을 언급해 읽는 이가 가해자의 이름을 추론할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문화계 미투 운동은 고발 글에서 가해자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그 예로 배우 송하늘과 최율은 각각 배우 조민기와 조재현의 실명을 거론한 성추행 피해 폭로 글을 작성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피해자들도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신상을 드러내며 언론 인터뷰를 하고, 실명으로 SNS에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혔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27일 연극배우 엄지영이 JTBC ‘뉴스룸’ 인터뷰를 통해 배우 오달수의 성 추문을 고발했다. 연극 감독 이윤택의 성 추문을 고발한 배우 이승비도 채널A의 ‘외부자들’을 통한 인터뷰에서 “이윤택 감독이 사과하더라도 받아 줄 생각이 없다”와 같은 직접적인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과거에 비해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연대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대감 형성을 통해 피해자들은 사회적 문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문화계 미투 운동은 문화계의 부조리한 구조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은 ‘어린 학생’ 혹은 ‘신인 배우’와 같이 문화계에서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고발을 하지 못한 이유도 가해자들을 고발했다가 오히려 문화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는 문화계 내부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 양지민<법무법인 이보> 변호사는 “신인 배우와 같이 문화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성추문을 고발하면 그 이후 정상적인 문화계 활동이 어려워지는데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계 미투 운동이 다른 분야까지 확산되면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담론도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다음소프트가 조사한 ‘인터넷 상 미투 언급량’에 따르면, 서지현 검사가 최초로 폭로한 지난 1월 넷째주보다 문화계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첫주에 SNS에서 언급량이 무려 35배 가까이 폭증했다. 그리고 현재 미투 운동은 문화계를 넘어 정치권, 대학가까지 퍼져나가며 사회 전반에 거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러한 파문에 대응하고자 ‘특별신고상담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 등 문화예술 분야별 성 폭력 신고, 상담 창구도 신설해 다음 달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양 변호사는 “단순한 사회적 공감 형성에만 그치지 말고 법적 처벌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며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관련 제도가 재정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려면
미투 운동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 의식도 필요하다. 가해자의 신상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몰고 가는 인터넷 여론은 미투 운동에서 지양해야할 태도이다. 양 변호사는 “미투 운동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라며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비방은 법적 저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투 운동에 접근하는 언론의 태도도 신중해야 한다. 배우 조재현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배우 송하늘은 폭로 글 말미에 “이 일과 관련해 많은 언론사에서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 오고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잊었는지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내려는 기자 분들의 태도가 저를 더욱 힘들게 했다” 며 “언론 또한 피해자를 또다시 숨게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즉 언론은 피해자의 폭로에 담긴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가 아닌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양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들은 목소리 내기가 어려운데 미투 운동을 통해 피해자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폭로와 사과의 순환구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문제의 예방 및 관련 제도의 재정비에까지 이어져야 한다. 나아가 미투 운동 으로 더 나은 문화계를 만드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도움: 양지민<법무법인 이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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