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한대신문, '빛나는 예지, 힘찬 붓 줄기'를 갖도록
[장산곶매] 한대신문, '빛나는 예지, 힘찬 붓 줄기'를 갖도록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12.04
  • 호수 1469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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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 한소연<편집국장>

1980년대 대학언론은 그야말로 전성기였습니다. 정부의 언론탄압 속에서, 기성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기성언론이 감히 다루지 못하는 내용을 대학언론은 다룰 수 있었고 ‘유일한 정보의 창’으로서 그 존재를 인정받았던 것이죠. 8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90년대 전반, 이 위상은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민주화 열기가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는 것은 구시대적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성언론이 ‘언론으로서’ 열과 성의를 다하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서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담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사실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듯싶지만, 20년 간 사골처럼 우려먹고 있는 단골소재입니다. 1994년도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1998년도 경향신문의 연재 등 이 소재는 끊임없이 다뤄진 것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진부한 리드를 볼 때면 대학언론사에서 일하는 2017년의 대학생들이 1980년 대 영광스러운 시절을 ‘비슷하게라도’ 구현해야 한다고 에둘러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 괜한 반항심이 생깁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않은가요.

하지만 슬프게도, 위기는 위기인가 봅니다. 유일한 소통의 창이었던 대학언론에 쏟아지던 제보가, 이제는 각 학교의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 숲’이나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향합니다. 그리고 공론의 장은 줄곧이 가상의 숲에서 이루어집니다. 스마트 폰 하나면 해결되는 이 편리함은 아날로그를 압도합니다. 한정된 지면에 개중 가치 있는 글감을 넣어야 하는 신문과 달리, 그 가상의 공간에서는 사사로운 이야기와 소소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아주 은밀한 고민을 토로할 수도 있죠.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제보가 쏟아집니다. 편리함과 익명성이라는 특징은 이렇게 압도적입니다.

학생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무엇인지에 대해 공론화하기 위해 발로 뛰던 대학언론사 기자들이 디지털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들은 한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밤을 새우며 지끈거리는 논쟁을 펼칩니다. ‘과연 기사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의 문제제기가 어느한 편을 간과해서 학생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등과 같은 논의가 논쟁의 주된 이유이죠. 야속하게도, 그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가 깊이 고민하고 고려해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이제는 ‘익명’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공론화되고 소비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흩어집니다. 2010년 재단과 총장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폐간 위기를 겪었던 중앙대 교지에 이어, 2014년엔 서울대 교지 ‘관악’이 폐간을 했습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평택대 신문은 학교 당국에 의해 폐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편집권 및 배포권을 침해받은 대학신문사는 군산대, 서울과기대, 서울대, 충남대, 청주대 외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폐간이나 편집권 및 배포권 침해처럼 학교 당국의 부당한 행위와 조치에도 불구하고, 학내 언론에 대한 학생 사회의 관심은 저조합니다. 입지와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탓입니다.

조금은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매체의 활용 역시 필요하나, 그에 앞서 ‘대학언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다시 정립한다든가, ‘독자들이 읽고 싶은 글은 무엇인지’, ‘대학언론기관이 다뤄야 할 기사는 무엇인지’와 같은 원론적인 고민을 할 때인 것입니다.

저는 비록 떠나지만 앞으로의 한대신문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원론적인 자문을 맹렬히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양질의 것들을 만들기 위해 치열히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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