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대한 새로운 접근 ‘회복적 정의’
범죄에 대한 새로운 접근 ‘회복적 정의’
  • 김성재 사회부장
  • 승인 2017.12.02
  • 호수 1469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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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통상적으로 범죄나 잘못에 대해 처벌을 내리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의라고 인식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잔혹한 범죄일수록 강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일각에선 처벌보다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가해자 처벌이 곧 피해자 회복은 아냐
흔히 어떤 범죄 사건을 접할 때,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가해자의 죄에 맞는 온당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해왔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 사법 정의는 응보적 정의관에서 범죄에 접근한다. 형벌은 죄에 대한 사적인 보복을 막기 위해 제3자인 국가가 그에 합당한 보복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조정을 간과하고 격리시킨다. 격리 과정에서 범죄자들은 교화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사회에 통합시키는 것이 형사 사법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보적 사법에서 사용하는 형벌이 재범을 막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실제로 장효진<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연구팀> 연구원은 “가해자를 교정시설에서 교화시키려고 하지만 실제로 교화되기보다는 교정시설에서 범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우도 다반사다”며 이러한 처벌은 범죄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함을 지적한다. 

더불어 응보적 정의관에서 내린 판결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파괴된 삶에는 변화가 없다. 실제로 피해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는 그저 사회에서 격리된 채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장 연구원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사용되는 막대한 시간, 돈, 에너지를 피해자 회복에도 할애한다면 사회가 더 정의로워질 수 있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회복적 정의란 범죄를 특정 사람이나 공동체의 관계를 훼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틀어진 관계와 피해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회복하는 과정에 있어 제3자(국가, 사법기관)의 개입이 아닌, 사건 당사자들의 자발적 해결을 지향한다. 즉, 갈등해소와 회복에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가 주를 이루게 된다. 장 연구원은 “많은 피해자들이 처음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자신의 삶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며 “가해자의 처벌 이전에 피해자의 삶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위 사진은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를 비교한 표이다.
▲ 위 사진은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를 비교한 표이다.

회복적 정의가 적용되면 어떨까
A군과 B 군이 있다. A군은 친구 B군과 말다툼을 하던 중 주먹다짐을 하게 됐다. A군의 폭행으로 B군은 전치 6주의 상해를 입게 됐다. 이 사건은 학교폭력에 해당되며 A군은 ‘보호자 감호위탁’, ‘40시간의 사회봉사’, ‘장기 보호관찰’ 등의 처분을 받았다. 또한 그는 법의 심판뿐 아니라 교칙에 의거한 ‘심리 치료’와 ‘강제 전학 조치’의 처분도 같이 받게 됐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앞서 나온 판결들은 모두 ‘무의미’하다. 회복적 정의에서의 처벌은 피해자의 회복과 연관이 있을 때 그 기능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 회복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먼저 A군과 B군, 그리고 당시 같은 교실에 있던 친구 몇 명의 동의를 얻고 한 자리에 모인다. B군은 당시 자신이 느꼈던 상황과 피해에 대해 말한다. 이 과정에서 A군은 B군이 느낀 피해에 대해 들으며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객관적이고도 무게감 있게 마주한다. 이후 B군은 A군에게 자신의 피해 회복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반 친구들 앞에서 자신에게 사과한다거나, 자신이 발을 다쳐 걷기가 어려우니 다 나을 때까지 가방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A군은 상대의 요구를 듣고 피해자의 회복에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장 연구원은 “이 결정을 타인이 본다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납득하고 지는 책임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눈여겨 봐야 할 회복적 정의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가 범죄에서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이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마주하는 것으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장 연구원은 “사건 당사자의 동의가 절대적이라“며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 강제로 마주하게 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직까지 회복적 정의는 국민 여론과의 괴리가 심하다. 이는 응보를 정의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처벌이 내려지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학습해왔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 사법 정의는 응보적 정의관에서 범죄에 접근하고 공적 존재인 국가가 합당한 보복을 내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국민들이 회복적 정의를 쉽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회복적 정의가 어떤 범죄에 적용될 수 있으며, 사법 분야 깊숙이 들어오기 위해선 논의돼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존 문제의 대안적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응보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회복적 정의’는 우리가 처벌에 주목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도움: 장효진<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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