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부문 대상]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비평 - 남은 자들의 기억
[2017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부문 대상]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비평 - 남은 자들의 기억
  • 김승연<정책대 정책학과 15> 양
  • 승인 2017.12.03
  • 호수 1469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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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치여 끊임없이 내 자신을 깎아가면서 살아가다 보면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때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하루하루 나이가 들수록, 내가 있는 자리 딱 그만큼에서만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간다. 이보다 넘쳐서도, 혹은 모자라서도 안 된다. 짧게나마 해 본 인턴 생활을 통해 특별하다고 믿었던 내 존재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누군가 그럼 도대체 어떤 점에서 당신은 자신을 당신 자신으로 인식하는 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나만이 겪어 온, 과거의 특별한 ‘기억’ 이 있고, 이 기억이 나를 남들과 다른 존재로 만든다고 말이다.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이 기억에 대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기억과 죄책감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던 여주인공 한나와 마이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6살이던 마이클은 30대의 한나를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데, 한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이클에게 말도 없이 사라진다.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던 한나가 사라지고, 마이클은 그 영향으로 공부 외의 어떤 것에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법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한 수업을 통해 참관하게 된 나치전범 재판에서 피고인석의 한나를 만나 갈등하게 된다.

성인이 된 마이클이 한나와 재회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더 이상 ‘사랑’ 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와 다르다. 마이클은 한나가 나치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과 그녀가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재판에서 한나는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지만, 감독관으로 취직되어 포로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업무를 맡은 이상, 자신의 일과 배치되는 일-화재 속에서 포로들을 풀어줄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오히려 재판관이라면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거냐고 반문한다. 짧지만, 한나가 재판에서 하는 말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한나가 생계를 위해 나치의 일에 가담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나치의 일에 가담하지 않고도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비록 그 일이 나치의 일을 통한 보수보다 적다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그녀는 자신의 양심을 버려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으므로. 한나 역시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나치에 가담한 다른 이들의 모함으로 인해 공범들의 혐의까지 갖게 된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이상 복역한다. 기나긴 세월동안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생의 의지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것만이 그녀 나름대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죄를 갚아나가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나치의 일에 가담한 가해자였기 때문에 한나가 갖는 죄책감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주목한 것은 한나의 죄책감만이 아니다. 한나가 유죄를 선고받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마이클 역시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이클은 나치의 일을 지지한 적도 없고, 나치전범의 일에 가담한 적도 없다. 도대체 왜 그는 괴로워한 것일까? 한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서? 한나가 가담한 일의 무게 때문에?

이 영화가 남자 주인공인 마이클이 한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를 16세로 상정한 데에는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를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한나는 직접적으로 나치의 만행을 목격하고 이에 가담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이다. 즉, 한나에게 있어서 전쟁에 관한 기억은 매우 직접적인 경험이다. 반면에, 마이클에게 있어서 2차 세계대전이나 나치에 관한 기억은 간접적인 경험에 불과하다. 한나를 비롯해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들, 나치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자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 등의 전쟁을 겪은 세대로부터 이에 대한 마이클의 기억은 시간상으로 유리되어있다. 마이클은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전후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클이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감내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전쟁을 겪은 세대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기록물의 형태이든, 경험한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된 세대는 이 기억으로 인해 독일인이라는 공동체의식을 갖게 되고, 마이클이 영화 말미까지 죄의식을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을 통한 연대와 회복

이 영화는 한나에게만 죄를 묻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나치의 만행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게 된 마이클과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공동체의 상처를 회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완결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마이클은 한나의 유죄선고를 목격한 이후,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이는 영화 장면 곳곳에서 드러난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그 가정에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고, 계속해서 거리를 둔 그는 결국 이혼을 한다. 성장한 딸조차도 그에게, 어렸을 때부터 원인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고 토로하는 장면에서, 마이클이 이러한 죄의식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자신을 가두면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이클은 한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그 테이프를 보내는 행위를 통해, 그의 죄의식을 조금씩 해소하기 시작한다. 한나가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타인에게 밝히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타인의 죄까지 모두 자신이 했다고 거짓자백한 것으로 인해 원래 그녀가 받아야 할 형벌보다 더 큰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직 마이클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그녀가 나치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고, 무엇보다 한나 자신이 이 사실을 밝히길 원치 않는데 제 3자인 자신이 개입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담아왔던 마이클이다. 그리고 마이클의 녹음테이프를 받아보며, 끔찍한 죄를 저지른 자신도 어느정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 한나는 교도소 안에서 글을 깨우치게 되고,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문맹이라는 수치심을 이겨낸다.

그러나 이러한 한나의 희망은 그녀가 가석방되기 며칠 전, 몇십년 만에야 면회를 온 마이클의 냉담한 태도로 인해 깨진다. 가석방되어 긴긴 세월,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자신을 내보내려 했던 한나는 과거 그녀가 저지른 죄를 기억하냐며 경멸을 담아 묻는 마이클을 보며, 어떻게 해도 자신의 죄는 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사회에 나가 새로운 삶을 사는 일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또다른 상처가 된다고 느껴 자살한다. 수감생활동안 자신이 은행과 깡통저금통에 모아둔 전 재산을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전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마이클을 통해 한나의 죽음을 전달받은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있어서 한나의 죽음은 그 어떤 의미도 있지 않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있어 한나의 죽음은 자신이 겪은 그 끔찍한 일들을 자행한 사람이 이제와서 자신의 죄책감을 덜고자 한, 전적으로 자신만의 편의를 고려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나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고, 그녀가 행한 일들은 영원히 기록과 기억을 통해 남았다. 그리고 영원히 가해자와 희생자라는 이분법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과거사의 문제도, 영화의 결말에서야 이러한 역사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이클은 한나가 죽고 난 뒤, 자신의 딸을 그녀의 묘지로 데려가 자신과 한나의 관계를 고백하고, 긴긴 세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결국 공동체의 상처로 남게 된 기억은, 남은 자들의 기억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된다. 이렇게 기억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활발한 소통을 통해 다시는 같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교훈이 전달된다. 즉, 역사적 상처는 기억을 통한 남은 자들의 연대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을 깔끔한 구성을 통해 전달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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