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전용강좌, 이대로 괜찮은가
영어전용강좌, 이대로 괜찮은가
  • 한대신문
  • 승인 2017.11.27
  • 호수 1468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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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 하지만 실상은…

우리 학교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 모두 영어전용강좌(이하 ‘영전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영전강좌는 모든 내용(△과제 △교재 △수업 △시험 등)이 영어로 이뤄지는 강좌를 말한다. 영전강좌는 국제화 시대에 맞춰 학생들의 영어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현재, 우리 학교는 영전강좌 수강을 졸업 요건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재학 기간 중, 서울캠 학생들은 5개, ERICA 학생들은 4개의 영전강좌를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낮아지고, 수업내용 전달이 어려워 수업 질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이름만 영전강좌일 뿐 한국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영전강좌가 대학평가를 위해 허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과 함께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영전강좌의 문제점은 수강생들의 영어 실력 차이에 따른 반을 나누지 않고 있으며 개개인의 영어실력을 평가할 기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영전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이며, 이로 인해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은 수업의 내용에 대해 시시함을 느끼고,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즉, 영전강좌가 학생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전강좌를 진행하는 교수의 대응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에 맞춰, 원칙대로 영어수업을 진행하는 상향평준화 방식과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에 맞춰, 모두를 포용하기 위한 한국어수업을 진행하는 하향평준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졸업요건 충족을 위해 억지로 영전강좌를 듣는 학생들이 수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일부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출석만 하고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캠 학생 A씨는 “학생들이 수업참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의사전달을 못 해 팀플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원가회계와 소비자행동을 영전강좌로 들었는데, 한국어로 쉽게 진행됐더라면 전공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배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전, 운영 방식에 대한
확인 시스템 없어…
피해 받는 건 교수와 학생들

후자의 경우, 영어수업을 원하는 외국인 학생들과 일부 한국 학생들이 불만을 가진다. 전은하<공학대 전자공학부 15> 양은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 유학생들 역시 수업을 듣는데 영전강좌가 영어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캠 학생 B씨는 “전공 수업을 영전강좌로 들었는데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쓰시다가,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저조해지자 모든 수업을 한국말로 진행하셨다”며 “목표인 외국대학원 진출을 위해서는 전공 분야를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런 능력을 전혀 기를 수 없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또한 B씨는 “진짜 영어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영전강좌 제도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영전강좌가 한국어로 진행되는 상황은 학생들의 실력 차이 문제와 별개로, 교수가 영전강좌를 진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발생하기도 한다. 학교 측에서 교수를 임용할 때, 교수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일괄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채용된 대부분의 교수는 1학기에 영전강좌를 1개 이상 개설해야 한다는 계약상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영전강좌를 진행할 교수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서울캠 학사팀에 따르면 강의평가에서 영전강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수업이 이뤄진다는 고발성 평가가 종종 있었다. 학사팀은 ‘영전강좌가 한국어 수업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중징계 사유가 되며, 즉각 신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전강좌에 대한 검증이 과제와 시험이 영어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 끝나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실제로 수업이 영어로 운영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학교 측
영전에 대한 개선계획 없어
“자율적으로 해결하길”

하지만 학생들의 영어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는 학교 측은 영전강좌 제도의 개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정준구<교무처 학사팀> 차장은 영전강좌로 인해 수업을 듣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국제교육원에서 다양한 영어실력 증진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영전강좌를 듣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그러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영어실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보조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정 차장은 “영전강좌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강제적으로 어떤 제도를 도입해 교수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포기하지 말고, 교수와의 소통을 통해 어려움을 전달하고 자연스럽게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전강좌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철저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정 차장은 “모든 영전강좌 수업에 대한 녹취록을 받아 검사하고, 수업을 참관하는 등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만한 부작용들에 대해 교수들과 논의해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또한 “강의평가를 통해 한국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영전강좌에 대한 제보를 받으면 최대한 철저한 확인에 나서고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해결을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영전강좌는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지훈<사범대 교육공학과> 학과장은 “글로벌 시대의 영어 경쟁력을 위해 영전강좌는 꼭 필요하지만 학생들이 준비돼 있는가, 교수들은 영어강의가 원활하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학생도 교수도 상당한 준비가 돼 있어야만 실제 도입 취지를 실현하는 영전강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영전강좌의 도입 목적인 ‘글로벌화 시대에 맞춘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 있다. 학교 당국은 소수의 교수와 학생들에 국한된 문제일지라도, 그들의 정당한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문제의 원인을 면밀히 파악하고, 영전강좌 제도의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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