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인이 보는 '블라인드 채용'은?
한양인이 보는 '블라인드 채용'은?
  • 이화랑 기자
  • 승인 2017.11.27
  • 호수 146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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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대선 공약인 ‘블라인드 채용’은 지난 7월 공공부문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며 올 하반기 취업 준비생들의 최대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채용 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돼 불합리한 차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정보는 가리고 실력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양대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본지는 서울캠퍼스 학생 271명과 ERICA캠퍼스 학생 174명, 총 445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시행했다. 설문 문항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주희 연구원의 검토를 받은 연세춘추 1801호 ‘연세인과 블라인드 채용&지역인재 채용 인포그래픽스’를 참고했다.

▲ 그래프 1

블라인드 채용, 우리도 찬성합니다
먼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찬반 여론을 살펴보자. 지난 7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블라인드 채용을 주제로 취업 준비생 997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취준생의 82.2%는 ‘블라인드 채용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찬성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전체 한양대 학생들에게서도 ‘찬성한다’가 54.6%, ‘반대한다’가 26.7%로 찬성 여론이 우세하게 나타났다(그래프 1). 이를 캠퍼스별로 자세히 분석해보면, 서울은 ‘찬성한다’ 49.4%, ‘반대한다’ 32.5%의 응답률을 보였고 ERICA는 ‘찬성한다’ 62.6%, ‘반대한다’ 17.8%의 응답률을 보였다. 양 캠퍼스 모두 ‘반대한다’의 응답률보다 ‘찬성한다’의 응답률이 높다는 측면에서 한양대학교 학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민<경영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대다수 한양대 학생들 역시 지금까지 지속돼왔던 학벌 위주, 스펙 위주의 채용 제도가 공정하지 않았음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균등하게 기회를 제공하자는 제도의 기본적인 명분에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 그래프 2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그렇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공정한 경쟁 기대 △기존 이력서 속 과도한 개인 신상 정보 요구 △직무와 상관없는 무분별한 스펙 쌓기 해소 △직무능력 및 적성에 따른 인재 평가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그래프 2). 그중에서도 ‘공정한 경쟁 기대’ 지표가 63%의 수치를 기록하며 다른 지표들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력서로 인한 선입견과 차별적인 판단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이력서 속 과도한 개인 신상 정보 요구’ 지표와 ‘직무와 상관없는 무분별한 스펙 쌓기 해소’ 지표는 각각 13%, 11%를 기록하며 2, 3위에 올랐는데, 이 교수는 이 지표들을 1위 ‘공정한 경쟁 기대’ 지표와 연관이 높다고 봤다. 이 지표들 모두 본질적으로 ‘공정성 확보’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한 경쟁’을 핵심으로, 학벌 및 스펙 위주 채용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다음 지표들의 문제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결국 학벌에 대한 차별이 핵심적”이라며 “출신학교를 기재하게 되면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신호 또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신학교는 분명 채용에 있어서 유의미한 정보이지만, 그로 인한 고정관념은 지원자들을 규정화한다. 이 교수는 능력이 있는데도  학벌에 대한 편견으로 취업에 있어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편견으로 인해 기업은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놓쳐 또다시 인재를 선발해야 하고, 지원자들은 또다시 스펙을 쌓으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처럼 부당한 편견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직무수행능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현실에서는 블라인드 채용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 그래프 3

노력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  
반면 블라인드 채용 반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스펙 또한 능력과 성실함의 결과이기 때문 △객관적 기준 부재로 인한 채용 과정의 불투명성 증가 △기존 스펙을 대체할 평가 지표의 부족 △면접 준비 및 실무 경험 경쟁 과열 △실제로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 △시행착오로 인한 취업준비생 혼란 야기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그래프 3). ‘스펙 또한 능력과 성실함의 결과’라는 지표가 30%의 지지를 얻으며 반대 이유 1위에 올랐는데, 이 교수는 이에 대해 학생들이 취업을 노력의 보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이 제도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취업에 있어서 일종의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것을 파기해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인 A씨는 “스펙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일련의 활동들을 열심히 해왔던 나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객관적 기준 부재에 대한 우려도 28%, 기존 스펙을 대체할만한 평가 지표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17%에 달했다. 이 교수는 “그 부분을 지금 당장 명확하게 하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 해서 블라인드 채용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각 기업마다 평가 지표들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제도의 변화에 따라 단기적으로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사회적 효용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 그래프 4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전공’은 기재해야 
지원서 기재사항 중 존속해야 할 항목을 묻는 질문에는 △전공 △학위 △출신학교 △학점 △성별 △증명사진 △출신지역 △가족관계의 순으로 높은 지지율이 나타났다(그래프 4). 특히나 ‘전공’은 64%로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입사지원서가 채용직무와 관련된 지식·기술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교육·훈련 △자격 △경험 등의 항목으로 구성됨에 따라,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항목인 ‘전공’ 역시 기재함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 교수는 “전공은 필요에 따라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분”이라며 “전공 또는 학위는 일정 부분 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2%의 지지를 받은 ‘성별’ 지표는 중위권에 안착했다. 이러한 결과는 ‘이제는 성을 써도 크게 차별받지 않는다’ 혹은 반대로 ‘특정한 직무에는 성별 구분이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증명사진, 출신지역, 가족관계가 하위권 세 지표를 차지한 이유는 해당 지표들이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어, 합리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판단에 대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려면  
한국 조직은 대체로 종합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뽑고 다양한 일을 맡기는 방식을 취해왔다. 때문에 학생들도 ‘일반적인’ 스펙을 쌓아 자신이 종합적으로 우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해왔던 만큼 블라인드 채용 도입에 있어 ‘역차별’과 ‘핵심 기준 부재’ 등의 문제를 제기함이 당연하다. 최나은<경영대 경영학부 15> 양은 “한국은 대학에 와서도 정작 꿈에 대한 고민은 할 수 없고, 취업을 위한 스펙 경쟁에만 몰두하게 되는 사회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블라인드 채용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말했다. 최 양은 스펙을 가리면 자신만의 ‘스토리’가 강점이 될 수밖에 없기에, 취업에 있어서 온전히 자신의 성향과 직무 적합성만을 고려하게 될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다. 

이 교수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 해서 그 제도가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성공적으로 본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기업은 직무를 중심으로 일 처리 방식을 체계화·전문화시켜 그 일에 특화돼 있는 인력을 채용하고 그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역차별에 대한 논쟁이나 이슈들을 유형화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매뉴얼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포그래픽 임지은 기자 ije9917@hanyang.ac.kr
도움: 정서윤 수습기자 kate0518@hanyang.ac.kr
이상민<경영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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