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3위, 9위’, 누구를 위한 줄세우기인가?
[장산곶매] ‘3위, 9위’, 누구를 위한 줄세우기인가?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11.06
  • 호수 146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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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 한소연<편집국장>


10월만 되면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 순위가 적힌 현수막이 교내에 가득하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현수막에 의하면, 서울 3위, 에리카 9위란다. 학교를 다닌 기간 동안 같은 부류의 현수막만 4번 봤는데, 의문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왜 하는 거야?”

언론사 대학평가는 20여 년 간 지속되고 있다. 1994년 중앙일보에 의해 시작됐고, 조선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동아일보까지 줄줄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시행하며 밝힌 취지는,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역량을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대학을 발굴, 소개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 하에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언론사들이 해당 사업을 시작하자 사업의 영향력 역시 막대해졌다. 대입 준비생들에게 하나의 대입 지표로서 활용됐고, 대학들도 언론사 대학평가에 휘둘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반대의 목소리도 커졌다. 대학 서열화를 통해 경쟁을 부추기고, 그것이 곧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또한 각 대학의 특성이나 비전, 전략을 고려하지 않은 서열화로 대학의 건강한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의 본질을 흐린다는 원론적인 주장은 차치하더라도,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역량을 강화한다는 이 사업의 목적이 건강히 실현되고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 

먼저 언론사들이 시행하는 대학평가의 모든 개별 지표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할 수 없고,. 담보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체 평가의 객관성 보장으로 까지 이어질 수도 없다. 영향력이 큰 중앙일보의 경우, △교육여건 △교수연구 △학생교육노력 및 성과 △평판도 이렇게 네 갈래로 나뉘는데, 문제는 ‘평판도’이다. 평판도를 위한 설문조사 항목으로는 ‘신입사원으로 뽑고 싶은 대학’, ‘입학 추천하고 싶은 대학’, ‘기부하고 싶은 대학’ 등이 있다. 질문 자체가 주관적 견해를 요구해, 객관적임이 필수인 평가의 가치가 결여된다. 또한 응답자 표본 구성에 대표성의 문제도 있다. 중앙일보가 공개한 평판도 조사의 표본 집단 중 과반, 총 550명이 기업 인사 담당자이다. 평판도의 객관성을 조금이라도 보장하기 위해서는 표본 집단의 다양화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다음은 이 평가가 대학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 보여 주기식 변화에만 치중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다. 대학은 평가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단기간 내에 교육의 변화를 시도해 여러 부작용을 낳고, 본래 목적이었던 교육의 내실적 측면은 간과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거부터 제기돼온 부작용은 ‘영어강좌 개설’이었다. ‘국제화’ 지표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교수 임용이나 외국인 학생 등록률을 높이는 것으로도 가능하나, 그보다 효율적인 것은 영어전용 강좌였다. 이에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허울뿐인  ‘영어 강좌 개설’로 이어진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차를 면밀히 따져 강좌를 개설했던 게 아니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마나한 영어 수업이라는 원성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질적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양적으로만 판단하는 현 기준 역시 교육의 내실화를 기대하기엔 무리다.

대학평가가 처음 시행된 이래로 평가를 함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수정과 보완을 거쳐 문제를 없애가고 있다. 가령 국문학 등 한국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 학문의 경우 국제 학술지에 등재가 어렵다는 점에서 교수 연구 업적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도 제기되는 문제점들이, “그러면서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에 대한 의문을 끊어내지 못하게 만든다.

2014년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여러 사립대학의 총학생회가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반기를 들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측에서도 전국대학총장 명의로 언론사 대학평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서명서를 내기도 했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최종운 군은 “우리는 사회 지성인으로서 대학을 스스로 고민하겠다. 그리고 때때로 필요하다면 강하게 꾸짖고, 자성하며 스스로 성장하겠다”며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마음도 받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역량을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대학을 발굴하고 소개하겠다는 대학평가, 누구를 위한 평가이며, 누구를 위한 줄세우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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