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네넴띤' 보다 심각한 한글파괴?
[장산곶매] *'네넴띤' 보다 심각한 한글파괴?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10.16
  • 호수 146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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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 한소연<편집국장>

지난 9일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571번째 해가 되는 날이었다. 한글날이 되면 늘상 신조어 등장으로 인한 한글 파괴, 무지한 맞춤법, 야민정음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언중의 언어생활을 문란하게 만들며 순수한 한글까지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노하실 것이다”라는 위협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의 언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매년 반복되는 앞서 언급한 진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좀 더 건설적인 주제가 논의돼야 한다. 바로 ‘소리 나는 대로 적음’으로 인해 파생되는 어원 파괴가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이 편찬하는 「한국 어문 규정집」 속 총칙 제1장 1항은,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의한다. 즉,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음소주의와 형태를 살려 적는 형태주의를 혼용해 사용해도 된다는 소리이다. 음소주의와 형태주의를 풀어 설명하기 위해 ‘꽃’이라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자. ‘꽃’을 음소주의에 맞게 적는다면 ‘꼿’, ‘꼳’, ‘꽂’으로 적을 수 있으나, 형태주의에 입각해 적는다면 약속된 형태소의 일정한 모양을 밝혀 ‘꽃’이라 적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세종의 한글 창제 때부터 시행돼 온 사항은 아니고, 1988년에 새로이 규정된 것이다. 외려 세종은 형태주의를 강조했는데, 실제로 「월인천강지곡」과 「용비어천가」을 보면 ‘종성부용초성(종성의 위치에는 모든 글자를 다 적는 법)’과 ‘분철법(형태소의 경계를 음절 경계로 밝혀 적는 법)’이 적용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글의 본 형태를 밝혀야 함을 강조한 세종의 의도와는 달리,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주의가 파괴되고 편할 대로 쓴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이 언중에겐 편하다는 게 그 이유다.

많은 학자들이 말하듯, 한글은 매우 섬세하고 과학적이다. 소리 나는 대부분의 것들은 표준어가 아니더라도 표기할 수 있고, 그렇게 표기된 글을 읽는 사람 역시 이해할 수는 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일 수 있으나, 일본 국적을 가진 가수 강남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달료가야조. 후에옵시 욜시미 다료가면 언젱가 조은일이 잇술고에요(달려가야죠. 후회 없이 열심히 달려가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글을 올렸을 때도, 이를 이해한 대중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강남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소리대로 적는 게 편한 건 마찬가지다. ‘뭐해’를 ‘모해’로 쓴다거나, ‘좋아’를 ‘조아’로 쓰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 

공식적인 글쓰기에 ‘뭐해’를 ‘모해’로, ‘좋아’를 ‘조아’로 쓸 일은 없다고 단언하겠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라면 또 모를 일이다. 우리가 현재 표준어라고 쓰는 단어들 역시 대부분 음소주의에 입각해 오랜 시간 동안 관용에 따라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꼴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꼬락서니’는 본래 ‘꼴’에 ‘–악서니’가 붙은 말이었다. 현재 표준어에 해당하는 ‘꼬락서니’보다 형태를 밝혀 적은 ‘꼴악서니’가 어원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바깥’도 있다. ‘밖’이라는 뜻을 가진 바깥은 원래 ‘밖앝’에서 변형된 것인데, 이 역시 후자가 그 어원이 밝혀짐이 분명하다. ‘끝이 되는 부분’이라는 의미를 가진 ‘끄트머리’ 역시 과거에는 ‘끝의머리’ 즉, ‘머리의 끝’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으나 현재 사용되는 ‘끄트머리’는 그 어원을 알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음소주의는 언중에게 더 편하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쓰였다. 그 과정에서 형태를 밝혀 적었던 단어들이 탈락됐고, 본 단어의 어원마저 쓰는 이가 인지하지 못하는 폐단을 만들어 버렸다. 물론 언어라는 것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중의 언어 사용이 용이해야 하는 ‘경제성의 원리’가 개입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편의성이 강조돼, 음소주의로 치우친 단어가 표준어로 정립되다 보면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신조어, 야민정음 보다 더 심각하고 은밀하게 순우리말을 파괴하는 범인이 아닐 수 없다.


*네넴띤: 어떤 단어의 글자들을 뜻은 다르지만 외관상 비슷한 글자로 바꿔쓰는 야민정음 단어 중 하나로, 비빔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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