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서 락 페스티벌은 열리나?
누구를 위해서 락 페스티벌은 열리나?
  • 손채영 문화부장
  • 승인 2017.10.15
  • 호수 1464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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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의 등장 이후 매해 여름은 각종 락 페스티벌의 열기로 뜨겁다. 그 후로 생겨난 여러 락 페스티벌은 해마다 표가 매진이 될 정도로 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락 페스티벌 중 하나인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 주최 측은 올해 총 6만 명의 관람객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사흘 내내 9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던 지난해에 비하면 아쉬운 수치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또한 지난해 8만 6000명의 관람객을 모았으나 올해는 그보다 1만 명 모자란 7만 6000명에 그쳤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윤혜영<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원인을 ‘소비자의 만족도 저하’로 꼽았다. 비싼 표 값에 상응하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락 페스티벌의 주 타깃(target)층인 2-30대 청년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락 페스티벌의 표 값은 1일권이 약 10만 원, 3일권이 약 30만 원 선에 책정된다. 얼리버드나 각종 카드사 연계 할인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비싼 가격이다. 그렇더라도 그 내실이 알차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줄어드는 관람객 수가 보여주듯, 락 페스티벌은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먼저 매해 음향 시설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메인 스테이지와 서브 스테이지간 음향 간섭 문제가 끊이지 않고, 음향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스테이지가 즐거움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주로 여름 야외에서 열리는 락 페스티벌의 특성상 우천에 대한 대비가 필수적이지만 주최 측의 준비는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2013년 한 락 페스티벌에서는 비 때문에 서브 스테이지가 무너지고 공연 시간이 연기돼, 참가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기도 했다. 모두 초창기부터 이어져온 문제들이지만 주최 측은 별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이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다른 문화생활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여러 락 페스티벌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현재의 상황을 꼽을 수 있다. 그저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생겨난 여러 락 페스티벌은 서로 겹치는 라인업과 일정으로 각자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채, 소비자들을 사로잡지 못하고 말았다. 

락 밴드 없는 락 페스티벌?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불만을 산 가장 큰 이유는 라인업의 변화다. 락 페스티벌의 초기 목적은 락 음악 마니아들에게 락을 즐길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락 페스티벌은 락 밴드의 비율을 점점 줄이는 추세다. 실제로 올해 지산 락 페스티벌의 이튿날 헤드라이너(간판급 출연자)는 힙합 장르에서 주로 활동하는 EDM 그룹 ‘메이저 레이저’였으며 주요 라인업은 R&B 가수 ‘갤런트’, EDM 그룹 ‘이디오 테입’뿐만 아니라 가수 ‘지코’, ‘딘’, ‘선우정아’ 등 락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뮤지션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EDM 그룹인 ‘저스티스’를 세웠다. 주요 라인업 또한 그룹 ‘볼빨간 사춘기’나 ‘악동뮤지션’ 같은 인디팝 밴드들이 장식했다. 원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네이버뮤직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지산 락 페스티벌은 2009년 1회 당시 총 57팀 중 36팀이 락 밴드였으나 올해에는 그 비율이 약 52% 정도 감소해 총 92팀 중 31팀만이 락 밴드였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경우, 행사가 재개된 2006년 당시에는 총 45팀 중 38팀이 락 밴드였으나 올해는 총 56팀 중 26팀뿐이었다. 실제로 락 페스티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박소원<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6> 양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힙합이나 EDM 페스티벌도 많은데 굳이 락 페스티벌에 힙합, EDM 뮤지션을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했다. 

오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려면
주최 측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락 음악이 국내에서는 비인기 장르이기 때문에 수익을 얻으려면 타 인기 장르 뮤지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음악 시장의 변화로 힙합이나 EDM이 주요 장르로 등장하면서 락의 인기가 더 줄었기 때문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락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해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혜영 교수 또한 “락 밴드를 줄이고 대중적인 타 장르 뮤지션을 섭외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매출을 늘릴 수 있고, 홍보의 수단도 되겠지만 결국 페스티벌이 지속해야 할 *브랜딩에는 부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각종 장르의 음악 페스티벌이 대중화되면서 락 페스티벌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었고, 주최 측은 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타 장르 뮤지션들을 부른다. 이는 단기적으로 타깃 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락 음악을 좋아하는 기존의 팬들, 즉 ‘충성 고객’은 떠나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 씨는 “이와 같은 추세라면 락 페스티벌이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윤 교수는 해결책으로 “다른 락 페스티벌과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가질 것”을 제시했다. 라인업에 타 장르 뮤지션들을 추가하기보다는 각자만의 고유한 특색을 갖춰 소비자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후지 락 페스티벌은 후지산이라는 지형적 특징을 이용해 무대를 기획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처럼 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락 페스티벌도 장소, 지형, 지역 문화 콘텐츠를 적극 반영해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제기된 음향 및 시설 문제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 

관람객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락 페스티벌은 우리의 즐거움을 책임지는 축제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움: 김헌식 문화평론가
윤혜영<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브랜딩: 소비자로 하여금 상품을 이미지화하기 위해서 광고, 홍보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로 소비자들로부터 상품의 이미지만으로도 상품과 회사를 알리는 마케팅의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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