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가 바라본 세상
성소수자가 바라본 세상
  • 김성재 사회부장
  • 승인 2017.09.25
  • 호수 1463
  • 3면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벽장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어 봤다. 10분쯤 흘렀을까, 등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숨이 막히고 너무 답답했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어요”
“청년세대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비율은 높은 수준이에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개선됐지만 그것과 별개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원지원<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은 성소수자가 여전히 사회로부터 이해와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산정책연구원의 성소수자 인식 조사(이하 인식조사)’에 따르면 2010년도의 20대는 26.7%가 “동성애자에 거부감이 없다”고 답했으나 2014년에는 47.4%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변화 역시 2010년도 16.9%에서 2014년도 28.5%로 조금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도 성소수자 문제가 정치적, 제도적 차원에 접근하면 항상 빛을 보지 못한다. 

<br>

2014년도 인식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한 응답자가 42.8%로 가장 많았고, 이에 비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2%에 그쳤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지만 이슈가 되는 법안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성소수자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이 뚜렷하지 않다. 다른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 ‘모름’ 혹은 ’무응답‘으로 평가를 유보한 비율은 28.3%인 반면, 여성, 노인 인권문제에 대해 평가를 유보한 비율은 각각 6.6%, 5.5%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성소수자 차별을 인권 문제로 판단하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판단을 유보하거나, 인권문제가 아니다’고 답한 비율이 52.9%인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의 결과로 보인다.

“아직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성소수자들이 존재해요”
성소수자는 사회적 다수인 이성애자와 다른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적 지향은 이성 또는 동성, 혹은 제 3의 성별에 대한 심오한 정서적, 애정 및 성적 매력에 대한 각 개인의 수용성을 의미한다. 간혹 성적 지향을 성적 취향으로 잘못 쓰기도 하는데 성적 취향은 페티쉬에 가까운 것으로 성적 지향과는 다르다. 

성 정체성은 자신의 젠더에 대한 자각, 자아의식을 말한다. 현재까지 규정된 성 정체성의 종류로는 남성 정체성, 여성 정체성, 젠더퀴어(Genderqueer)적 정체성(그 밖의 제3의 성별이라고 느끼는 내면적인 자아의식)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성 정체성이 생물학적 성별(sex)과 일치하는 경우를 시스젠더(Cisgender), 성 정체성이 생물학적 성과 반대인 경우를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하며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가진 경우를 젠더퀴어라 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규정된 것이 아니며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정의가 늘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권 운동에서 성소수자를 통칭할 때에는 보통 ‘*LGBT+’라고 한다. ‘LGBT’ 뒤에 ‘+’가 붙는 이유는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LGBT+’로 표기하는 것은 아직까지 규정되지 못한 소수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원 의장은 “아직도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고 있다”며 “이는 이분법적 성별규범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정치적 선언입니다”고 주장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더 나아졌죠. 그렇다고 해서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최근 퀴어축제, 대학사회의 리더들의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백승목<성공회대 총학생회> 회장(이하 백 회장)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제야 공론화됐다”며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개인과 공동체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순히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모임뿐 아니라 비(非) 성소수자임에도 성소수자들을 위해 힘쓰는 단체들도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반면, 성소수자 문제가 정치적,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하게 되면 빛을 보지 못한다. 2007년 법무부가 UN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 입법을 예고했지만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후 두 차례 차별금지법 발의가 있었지만 역시 무산됐다. 2014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유승민<바른정당> 의원이 ‘*인권교육지원법안’을 발의했으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들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했다. 올해에는 대통령 후보였던 심상정<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 뜻을 밝혀 논란이 됐었다. 더불어 지난 5월, ‘정의당’은 동성 간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군형법제 92조 6항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도 통과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선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저는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입니다”
가능성은 있다. 최근 대학 사회에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소수자 대표가 선출되고 있고 대학 내 인권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등 학생사회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젊은 세대는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 호의적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016년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김보미<서울대 아동소비자학부> 씨의 *커밍아웃(coming out)을 시작으로 성소수자로는 6번째로 리더의 자리에 오른 백 회장은 “큰 성소수자 운동판에서 함께 뛰어들어 같이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백 회장은 “소수자가 대표가 된다는 것은 다른 소수자들에게 ‘우리’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 같다”며 앞서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의 커밍아웃이 자신에게 고마움으로 다가왔듯이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원 의장 역시 “학생사회에서 커밍아웃 한 대표자들이 생긴다는 것은 학생사회의 소수자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많은 소수자들의 삶의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모습은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학생사회의 구성원들이 성소수자를 대표자로 선택했다는 것은 그의 방향성을 납득하고 이해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언젠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끌어낼 것이다. 원 의장은 이런 학생사회의 모습에 대해 “소수자 대표가 많이 등장한다면 당장 해결되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소수자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원 의장은 성소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단 제도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수자와 그들이 겪는 차별 및 불평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지만, 성소수자는 사회적 소수자의 한 유형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이러한 한국의 교육과정은 암묵적으로 남성중심적의 ‘이성애적’ 인간을 바람직한 인간으로 전제한다. 이런 인간상은 학교 안의 성소수자를 존재감이 결여된 인간으로 만든다. 

헌법 11조 1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있는 만큼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원 의장의 주장처럼 동성혼 법제화, 성별정정 과정의 간소화 등 법률적 제도 개선과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교육한다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소준이 향상될 것이다.     

도움:  백승목<성공회대 총학생회> 회장
원지원<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
참고 자료: 김지윤 외 3명. 
이슈브리프 한국 유권자와 이슈 III: 성소수자(LGBT) 인식. 아산정책연구원, 2015.04.01.
SOGI 법 정책연구회. 한국 LGBTI 인권현황 2015. 
49통일평화재단. 2016.05.17.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 2016.06.11.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렌스젠더, 퀘스쳐너리(Questionary), 간성(intersex), 무성애자(Asexual), 범성애자(Pansexual)  등을 의미한다.
*차별금지법: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률안 및 조례안이다.                                                                         
*인권교육지원법안: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여 폭력과 차별 등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권의식의 함양을 위하여 인권교육의 촉진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황예도 2023-07-29 16:13:53
이 글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움과 사회적 이해 부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학생사회에서 성소수자 대표자들이 선택된 사례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개선과 법률적 제도 개선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