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상도덕 없는 대기업에 눈물 흘리는 청년창업
[장산곶매] 상도덕 없는 대기업에 눈물 흘리는 청년창업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9.02
  • 호수 1461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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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편집국장>

청년 창업 지원 정책은 이전 정부부터 추진돼왔다. 현 정부 역시 중소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사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에 동의하는 바, 힘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스타트업을 보호할 만한 정책 역시 탄탄히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창업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장치가 제대로 가동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대학생 중에 미래형 식사 ‘랩노쉬’를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랩노쉬를 출시한 회사, 스타트업 ‘이그니스’가 최근 한 대기업에 의해 지식재산권을 침해당했다.

이들은 2015년, 기능성 식품으로 ‘랩노쉬’를 출시했다. 일회용 용기 속 들어있는 분말에 물을 탄 후, 섞어 마시면 그만인 간편한 식사 방법으로, 쉽게 주요 영양분을 챙길 수 있는 제품이다. 2030세대를 공략한 만큼, 청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밥족’이 보편화 되면서 간편식을 찾는 수요가 증가한 탓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존의 기능성 식사가 ‘기능성’에 집중된 나머지 맛은 형편없다는 편견과 다르게 맛있다는 것이 흥행의 주된 원인이라는 평가다.

이달 초 국내 대형 유통사 한 곳이 협력 제조사 ‘엄마사랑’으로부터 납품받은 유사 제품을 출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엄마사랑’으로 부터 납품받아 판매한 이 제품이 이그니스의 ‘랩노쉬’와 가루 성분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거의 같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방 의혹을 받는 이 제품은 랩노쉬의 반값에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힘없는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다.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는 “블루베리 요거트, 플랫 바나나, 쇼콜라 등 주요 제품명과 맛까지 그대로 차용해 제품 자체를 훔쳐갔다”며 “제품 원료와 공정과정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유통사는 “해당 제품의 외형이 랩노쉬 제품과 유사하다고 해서 제조사에 디자인을 바꾸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제품의 디자인, 회사의 영업 비밀과 같은 지식재산권이 침해당하는 문제는 주로 대기업 사이에서 발생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청년 창업 회사에서 속속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이는 비단 ‘랩노쉬’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됐다.

대기업이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지식재산권을 정식적인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교묘하게, 마치 ‘우리 것인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는 최근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침해가 특히 스타트업에게 치명적인 것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 이런 크고 작은 지재권 분쟁에 휘말리면 회사의 존폐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허청이 2016년에 발표한 ‘2015년 국내 지재권 분쟁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허 분쟁을 겪은 기업 가운데 ‘매우 심각하거나 상당히 심각한 기업의 경영위기(기업전략 수정, 자원 재배치 등)’를 경험한 비율은 58%이다.

보통 지재권의 경우 ‘특허’ 등록을 통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보다 자본, 인프라가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특허 출원 비용은 부담스럽다. 또한, 특허가 작용해 법적 보호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런 시간적 제약은 시장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스타트업에게 불리하다. 때문에 이들은 특허 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할 뿐더러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단 도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겪는 랩노쉬와 같은 상황도 빈번히 생긴다는 것이다.

창업인들은 주로 청년층이라 대학생인 우리와 매우 밀접하다.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당장에 학교에서도 창업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무작정 육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클 수 있는 환경조성이 동반돼야 한다. 나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정당하게 인정받고, 거대 자본에 의해 부당하게 착취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 창업 지원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한 경쟁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출발선을 같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 자본과 스타트업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기존보다 더욱 치밀한 제도적 장치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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