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긍정의 힘을 강요하는 이유는 따로있다?
[장산곶매] 긍정의 힘을 강요하는 이유는 따로있다?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4.09
  • 호수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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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 <편집국장>

필자는 부정적인 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좋게 생각해”하는 식의 말들이 싫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옥죄었고, 구태여 스트레스를 받긴 했다. 그게 불편하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니? 좋은 게 좋은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며 원치도 않았던 걱정을 해주곤 했다.
과거, 유독 심난한 날에는 명언 집을 펼쳐 보기도 했다. 책자 속 성공인들 중 대다수는 “내 성공의 원천은 긍정적 사고였다”고 말했다. 각종 TV 예능과 다큐멘터리에서는 긍정성이 다 죽어가는 식물도 살렸다고 연신 떠들어댔다.
두렵기 시작했다. 그들이 줄곧 하는 “긍정의 힘은 나를 성공시켰다”는 말은 마치 부정적이면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들렸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긍정적이지 못한 필자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낙관적이고자 노력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 들 때엔 생각을 바꾸려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그 의지는 무의식까지 제어할 수 없었고 뼈 속까지 깃든 부정성은 결국 고쳐지지 않았다. 다시 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은 망했구나”싶을 때 쯤, 문득 ‘이 사회는 왜 그렇게나 긍정성을 강요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령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좋게 좋게 생각해”라는 식의 낙관적 태도와 “나의 성공의 원천은 긍정적인 사고였다”며 긍정성을 강요하는 것은 비판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무지한 개인을 만들기 위함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번졌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적임을 강요하는 사회는 문제의 해답을 밖에서 찾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서 찾도록 호도한다고 주장했다.  “네 처지가 좋지 못한 이유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 있는 게 아니라 네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도록 조성한다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만큼, 낙관주의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영속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에런라이크는 또한 “긍정주의는 미국의 신사상 운동에서 태동해 기업계와 결합하면서 발전했다”며 “구조 조정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와 맞물려 기업이 선호하는 강력한 신념 체계로 둔갑했다”고 말한다. 경기난으로 정리해고가 일상이 되자, 한 기업은 어수선한 분위기와 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다. 이에 그들은 동기유발 강사를 초청해 강연의 자리를 만들었다. “해고를 당한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초청된 강사는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긍정적 사고는 반이성적 맹목이 습관이 되도록 만든다. 맹목이 무서운 이유는 비판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문제 해결을 유보하는, 대책 없는 무기력함이며 문제의 원인을 직시할 수 없는 무지로 이끈다. 긍정의 힘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러한 긍정성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다거나, 아름다운 미래를 펼쳐주지도 않는다. 그런 판타지적이고 사이비적인 해결 방법은 접어두고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힘든 이유는 우리의 부정적인 성격 탓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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