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가난한 보수
[장산곶매]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가난한 보수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3.26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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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 <편집국장>

대선이 5월 9일로 정해졌다. 대선주자들을 보며 ‘누구에게 한 표를 던져야 하나’하는 고민이 가득하다. 그전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나, 생각보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을 잘모르고, 포퓰리즘에 휩쓸려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이 많다. 나의 한 표는 소중하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면밀히 공부해야할 시점이다.
과거,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지인으로부터 들인 이야기이다. 한 노인이 동사무소에 오더니 버럭 화를 내며, “아니! 나는 박근혜를 찍었는데 왜 나에게 (복지적) 혜택을 주지 않는 거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경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날 정도로 빈번하다고 했다.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수가 꽤 많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도 가난한 이들이 보수주의자가 되는 황당한 현상에 의문을 품었다. 그 고민의 흔적은 그의 저서에 잘 나타난다. 그는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란 여가(leisure)를 즐기는 사람들로 이뤄진 계급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돈과 권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 데 (경제적으로) 큰 압력을 느끼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필요성도 못 느낀다. 때문에 ‘지금 그대로’를 선호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이와 달리 하위 소득계층은 ‘지금 그대로’를원하지 않는다. 현 제도와 생활양식에 고통을 받고 있기에 변화를 원하는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다.
그러나 베블런은 저소득층이 되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진보적이어야 하는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에 따라가는 데에도 버거웠고, 오히려 그 제도에 충실해야만 기초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현실에 순응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유한계급제도는 생존 수단 중 많은 부분을 하층계급으로부터 박탈함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줄이며, 그 결과 이들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학습은 물론 새로운 사유와 습성의 채택에 필요한 노력을 할 수 없는 지점으로 몰아가 그들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가진 자는 보수적 성향, 그렇지 않은 자는 진보적 성향을 가짐이 상식적인 것 같지만, 결과는 다르다.
분열증 같아 보이는 이 모순적 현상은 베블런이 지적한 100여 년 전 사회의 것만은 아니다. 앞서 필자의 지인이 전한 이야기 속 노인은, 자신이 저소득층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을 찍었다. 그리곤 아주 당당히 “보수 정당의 대표를 뽑은 나에게 왜 이렇게 대하냐”며 화를 냈다. 일상 속 생존에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21세기의 한국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여건에서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벅차다. 이미 절대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 가난한 이들을 사유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셋팅해 놨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더욱, 알아야 한다. 나의 한 표가 미래에 나를 위한 것으로 돌아올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대선은 5월 9일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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