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대학신문의 백지발행, 한대신문이 지지합니다
[장산곶매] 대학신문의 백지발행, 한대신문이 지지합니다
  • 한소연 편집국장
  • 승인 2017.03.19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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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연 <편집국장>

서울대학교 학보사인 대학신문은 지난 13일, 호외로 백지발행을 했다. “서울대학교 공식 언론인 대학신문은 전 주간 교수와 학교 당국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 불의에 맞서는 당당함으로 그들의 1면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주장한 편집권 침해에는
1. 전 주간(모 교수, 현재 면직 상태)이 ‘삼성 반도체 반올림’ 기사 게재를 불허하고,
2. 전 주간이 기자단에게 알리지 않고 기사 작성을 조건으로 하는 사업을 체결했으며,
3. 학생들의 본부점거 이슈를 줄이고, 개교 70주년 기념 소식으로 비중 있게 다룰 것을 요구한 것이 있다.
‘편집권 침해’라는 게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신문사 활동을 하다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실제로 각 학보사 편집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감할 수 있다. “학교에 좋은 일이 많은데 그것들 좀 실어 달라”부터 시작해서 “이번 호에는 왜 그렇게 학교에 부정적인 내용만을 실었느냐”, “기사의 초고를 보여 달라”까지 다양하다. 재밌는 건, 명확히 ‘싣지 마라’고 하면 문제될 것이라는 걸 아는지, ‘싣지 말라는 건 아닌데...’라며 한발 물러난다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편집국장들은 비슷한 레퍼토리에 냉소적인 웃음만 뱉을 뿐이었다.
그런 요구를 하는 학교 당국의 입장은 대체로 이러하다. ‘우리 대학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 같은 소재들은 되도록 실으면 안 된다’, ‘학보사는 학교로부터 예산을 받아 운영되며 원고료 등 금전적인 수혜를 취하고 있으니 요구를 들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혹은 ‘아니,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좀 요구할 수도 있지’일 때도 있다.
날이 선 비판이, 그로 인한 변화가 학교와 학생, 그리고 대학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듦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많은 학교 당국은 예산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무기로 날이 선 비판도 감시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들의 요구를 들으면 교내언론을 ‘언론사’가 아닌 그저 소식지로서의 기능을 하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학보사가 학교의 예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학교를 감시할 의무가 있다. 설령 학교에 좋은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건보다 우선으로 실릴 순 없다. 그것이 교내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대학신문 호외에서 대학신문 58대 부편집국장은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세상엔 수많은 ‘박근혜’가 있다. 책임지지 않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들은 똑같이 학교라는 소우주 속에서 대학신문을 살생부에 기입하길 서슴지 않았다.”
백지발행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언론다운 대학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한 그들의 결단은 학교 당국에 비위를 맞추며 ‘그것이 현명한 처사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 많은 학보사에게 큰 본이 됐다.
세상에 수많은 ‘박근혜’에 굴복하지 않은 대학신문에게 필자는 ‘지지한다’는 말로 그 고마움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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