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한중일 40%는 소주 한 잔을 못 마신다
[교수칼럼] 한중일 40%는 소주 한 잔을 못 마신다
  • 강보승<의대 의학과> 교수
  • 승인 2017.01.01
  • 호수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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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보승<의대 의학과> 교수
20년 만에 송년회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인 김 이사는 원샷을 안 했다. 한 모금 정도 목만 축이고 잔을 내려놨다. “맥주 한 잔도 안 마셔? 우리끼리 마시는 거니까 억지로 먹일 사람도 없고  한 잔 정도는 하지 그래” 그러자 그가 말했다.
“맥주 한 컵만 마셔도 5-10분만 지나면 얼굴 뻘개지고 머리도 아파, 무엇보다도 다음 날 전신이 피로감, 무력감이 심해서 거의 아무 일도 못해 오후 늦게 돼야 피로감이 사라져..”
‘거참 신기하네. 확실히 술이 안 받는 사람들이 있구먼’ 근데 우리 간호 팀장님도 비슷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소주 한 잔 마시면 바로 얼굴은 물론 전신이 뻘개지고 온몸이 가렵고 두드러기 같은 게 일어나요 죽기 살기로 두세 잔 더 마시면 심장 박동수가 150회까지 빨라져서 터질 듯이 쿵쾅쿵쾅해요”
위와 같은 분들이 한중일의 40%라고 말했지만 정확히는 36.37% 근처로 추정된다. 십 대 후반 혹은 스무 살 무렵 술 처음 먹기 시작할 때부터 나타난다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전 인구의 대략 45% 정도로 한중일 중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중국은 대략 33% 근처로 알려져 있는데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북부는 20% 초중반이고 광동성이 포함되는 남부와 남동지역 및 해안가는 40% 중후반에 육박한다. 대만도 45% 정도로 보고된다. 한국은 세 나라 중 가장 적은데 30%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체 인구로 보면 엄청난 숫자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은 현저히 적고 유럽과 북미의 백인, 아프리카의 흑인은 거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직장 상사나 동아리 선배는 얼굴 뻘개지는 것을 혈액순환이 좋은 증거라고 한다. 술 못 마신다고 버텨도 한 잔 두 잔 자꾸 마시다 보면 술은 는다고 강권한다. 심지어 의대 교수들도 소주 한두 잔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고 신문 방송에까지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인 30%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 무지한 까닭이다. 국내 의학, 약학 교과서가 거의 북미와 유럽 책이라 이런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다. 
에탄올은 몸으로 들어오면 알콜 분해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뀌고, 다시 2단계로 알데히드분해 효소에 의해 식초와 유사한 초산으로 바뀐다. 위에 언급한 분들은 2단계에 작용하는 알데히드분해 효소가 유전적으로 상당히 약해서 소량의 술만 들어가도 금세 상당 량의 알데히드에 노출된다. 부모 중 한 사람에게서만 약한 유전자를 받아도 형질은 발현된다. 그래서 많다. 다시 말해, 위에 언급한 김 이사와 간호 팀장의 증상은 급성 알데히드 독성 증상인 것이다.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꾸준히 노출되면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알데히드는 숙취의 핵심 원인물질이다.
이런 분들 중 아예 술을 안 먹는 분들이 많지만 사회생활 때문에 억지로 힘들게 먹는 분들도 꽤 있다. 어떤 분들은 몸이 힘들어도 건강에 좋다는 주변의 권유 때문에 포도주 한두 잔을 꾸준히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알콜과 관련한 한중일의 '비밀'은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여전히 드라마에선 건배와 원샷이 횡행한다.
그러므로 대학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약 계열은 물론, 화학, 생물, 사범대 계열 학생들이 동아리 뒷풀이와 동문회에서 계몽해야 한다. 술 못 하는 사람에게 소주 한 잔, 맥주 200cc 원샷은 농약 원샷과 같다고. 인문 계열 학생들은 소설이나 시나리오 작업 때 건배사를 바꿔야 한다. "얼굴 뻘개지는 사람 빼고 건배!”
얼굴이 가끔 뻘개지는 분들이 “좀 지나면 더 하얘져요” 라고 항의하는데 혈관이 강력히 수축한다는 무서운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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