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설] 집단지성과 촛불의 정치학
[교수사설] 집단지성과 촛불의 정치학
  • 한대신문
  • 승인 2017.01.01
  • 호수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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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이렇게 강렬한 한국 사회의 표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더욱이 집회도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래 우리 역사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낸 일이다. 세대와 계층과 계급과 성별을 넘어 광장에 모여든 이들이 든 것은 돌과 화염병, 쇠파이프가 아니라 촛불이다. 집회의 주체도 없고 리더도 없다. 모두가 주체이고 모두가 리더가 되는 그야말로 수평적 정치의 장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러한 삶이 가능했던 시기는 근대적인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의 망령이 약화되면서 새로운 정치적 무의식이 형성된 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국가나 민족 같은 거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던 중앙 집권적인 삶이 그것이 해체되면서 유목민적이고 파편화된 삶으로 바뀐다. 이것을 가능게 한 것은 디지털이다.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존재 그 자체이다. 아날로그와 대비되는 디지털 존재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비동일성 세대의 삶의 토대는 바로 이 디지털이다.
이들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무의식을 아날로그 세계에서와는 달리 보다 자유롭게 그것을 즐긴다. 나 혼자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상호소통을 통해 아주 신속하고 스펙터클하게 또 때로는 심적인 여유를 가지고 그것을 즐긴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향유를 자정하고 관리하는 장치들이 있다. 다만 이러한 장치들은 오프라인에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의 그것은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권력이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에 편중되는 일이 거의 없으며, 각자 각자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공공의 합의를 도출해 낸다. 흔히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여기에 작동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 작동한다는 것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반성과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관련 누리꾼들의 의견 개진 과정을 보면 정보의 신뢰성은 물론 신속성 그리고 성숙된 논쟁과 토론의 면에서 공중(public)의 생산적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담론 생산의 훼방꾼인 까쇠르(Casseur)의 의도된 궤변과 선동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인터넷 토론의 장에서의 자정을 통한 공동선의 추구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한 담론 생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많은 사람들이 아고라를 통해 긍정으로 돌아선 것은 여기에서 디지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의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인  무의식의 향유와 반성은 새로운 공중의 부활이면서 동시에 수평적 민주주의의 미래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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