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로] 침묵은 금이 아니다
[진사로] 침묵은 금이 아니다
  • 이수용 <대외협력처 대외협력팀> 과장
  • 승인 2016.12.04
  • 호수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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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용 <대외협력처 대외협력팀> 과장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장.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중, 마지막 질문 권한을 주최국인 대한민국 기자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순간 한 중국 기자가 ‘아시아를 대표하여 제가 질문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끼어들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은 한국 기자에게 받겠다.’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중국 기자는 ‘그러면 여기 있는 한국 기자들이 저에게 대신 질문을 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라며 고집을 부렸고, 이에 난감해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 분들 중 질문하실 분이 있으면 먼저 질문을 받겠다.’라며 기다렸지만 어색한 정적만 흐를 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 기자를 위한 질문권’은 중국 기자가 가져갔고, 이 해프닝은 질문과 토론에 소극적인 한국 사람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질문과 토론에 약하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직도 한국인들의 정서 깊숙이 깔려있는 유교사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직적 상하관계와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교적 정서에서는 윗사람에게 당당히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교사의 지식 전달만을 일방적으로 청취해야 하고 질문이나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와, 주어진 정답만을 무조건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교육 환경에서 질문과 토론을 위한 논리성과 창의력이 자라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셋째로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 사람들 특유의 정서 문제도 있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질문을 망설이게 되고, ‘혹시라도 지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 토론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교육 시스템을 무조건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질문과 토론에 취약한 문화가 글로벌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단기간에 정서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겠지만, 우리들 스스로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기본적으로 ‘다른’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표현을 혼용하지 말아야 하듯이,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만 질문과 토론을 위한 기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둘째, 질문과 토론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긍정적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위고하를 떠나 상호 간에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이 가능할 때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불합리를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독서를 통해 기초체력을 길러야 하겠다. 질문과 토론이란 풍부한 배경 지식과 논리성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며, 이를 위해 독서가 최선의 수단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의 0.3% 정도를 차지하는 소수 민족이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교육의 핵심은 바로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근면과 성실’을 경쟁력으로 성장해왔다면, 미래를 위한 경쟁력은 다름 아닌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에서 찾아야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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