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마지막에는 박수치며 떠나라
[장산곶매] 마지막에는 박수치며 떠나라
  • 정진영 편집국장
  • 승인 2016.12.04
  • 호수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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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편집국장>
희망차게 시작했던 올해도 어느덧 12월에 접어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여러모로 12월은 많은 사람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힘들었던 일 년을 마무리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끝’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한 해로 넘어가는 ‘마지막 징검다리’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연말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설렘’일 것이다. 필자에게 12월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끝’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도움닫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전제로 함에 있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시작 혹은 출발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근거리고 설레게 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시작은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설레고 희망찼던 처음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빨리 끝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그러나 또 막상 끝에 당도하고 보면 내가 달려온 길이 허무해 보이고 또다시 시작해야 하는 새로운 달리기에 벅찬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이중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힘들다 말하면서도 묵묵히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은 어쩐 일인지 사람들에게 어두운 이미지가 강하다. 마지막을 떠올리면 이별이나 아쉬움, 허탈함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그런 듯하다. 물론 모든 것에 이중적인 면이 존재하긴 해도, 양면이 고루 존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시작보다는 마지막을 더 좋아한다. 시작할 때는 끝을 상정해야 하지만, 끝이 난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은 아쉬움을 동반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허무함이나 절망감까지 동반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필자가 마지막을 높이 사는 이유는, 앞만 보며 살아가는 인생에서 잠시라도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마지막’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길고도 길었던 한대신문의 발간 일정을 오늘부로 마무리 짓는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마지막 날이건만, ‘시원섭섭하다’는 말만큼이나 필자의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없는 듯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마지막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시원할 것만 같았던 마지막이지만, 또 막상 닥치고 보니 시원하지만은 않아서. 그렇지만 사람은 쿨해져야 할 때가 있다. 마지막 순간이 오게 되면 좀 더 잘할걸 하는 아쉬운 마음에 그 마지막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후에는 과거에 얽매이는 결과밖에 남지 않는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끝 이후에는 또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깨닫고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도 필요하다.
‘히트친 드라마나 영화가 후속 시리즈가 나오는 순간, 그 시리즈는 망한다’는 속설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애초 시리즈로 기획된 것이 아닌, 단지 전작이 흥행했기 때문에 후속작도 성공할 것 같아 내놨다가 낭패를 본 경우들이 수두룩하다. 이는 박수칠 때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성공’이라는 빛나는 트로피를 손에서 놓지 못해 매일 들고 다니다간, 어느 순간 어디에서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그 트로피를 내 손에서 놓쳐버리는 수가 있다. 언제나 마지막은 아쉬움과 후회를 동반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말 ‘구질구질하게’ 마지막을 놓지 못해 매달리면 좋았던 과정들마저 망칠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며 시작했고, 힘들어도 꿋꿋이 버티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온 만큼 마무리도 좋아야 하겠지 않는가. 그러니 모두가 마지막에는 박수치며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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