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빽’ 믿고 살지 맙시다
[장산곶매] ‘빽’ 믿고 살지 맙시다
  • 정진영 편집국장
  • 승인 2016.11.21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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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편집국장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필수조건 같은 것’.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빽’이라는 것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학연, 지연, 혈연 등등 ‘빽’의 종류는 다양하고도 많다. 소속집단에 대한 동류의식이 강한 우리나라는 ‘저 ○○에서 왔어요’ 혹은 ‘저 ○○ 출신이에요’ 한 마디면 모르는 사람도 언니, 형, 동생이 된다. 특히나 돈과 권력이 많은 ‘부모 빽’이 있으면 그 자식은 세상 살기가 더없이 편해진다. 일반 수험생들은 정말 죽어라 공부해도 대학교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데다 재수, 삼수까지 하는 판국에 부모만 잘 만나면 힘들여 고생하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다. 물론 그 이후의 사회적 자리까지 보장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야.” 누구의 말처럼 정말 그게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능력만 믿고 어떤 노력도 안한다면 그 뒤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추락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 추락은 본인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도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 그 실체를 깨닫고 원래 있었어야 할 자리로 끌어내려 발생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빽’을 용납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뜨거운 불길을 만들어냈고, 그 불길은 매주 토요일 광화문의 촛불로 이어지고 있다.
100만 이상의 국민이 모여 다양한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대통령 하야’라는 한 가지 목표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혈연, 지연 등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썩은 뿌리를 뽑아내는 근본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것도 어찌 보면 ‘지연’의 일부였을 것이다. 처음 접근했던 의도가 어떠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둘이 친한 언니-동생 사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하던 것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친한 동생에게 정무를 공유하기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찌됐든 근본부터가 잘못됐다.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 어떤 연결고리만 있어도 그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순수한 정에서 시작한 행동일지라도 그 결과는 누군가에게 휘두르는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情)에서 비롯되는 공사(公私) 구분의 모호함이 사라질 때가 됐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더 이상 혈연을 바탕으로 한 작은 단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하나의 큰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성장한 사회의 크기를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가. 과거의 문화에만 머물러있으면 더 큰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한 만큼 지도층의 의식 수준도 발전해야 한다. 더 이상 ‘빽’은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가득 채운 촛불이 반짝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는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무섭게 일고 있는 촛불의 파도가 너무도 오래 썩어 그 악취 때문에 누구 하나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뿌리를 시원스럽게 함께 뽑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당하게 본인의 배후에 믿을만한 누군가가 있다고 자랑처럼 떠드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실력만으로도 떳떳하게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그 바람이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빽’ 말고 ‘나’ 믿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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