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필수조건 같은 것’.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빽’이라는 것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학연, 지연, 혈연 등등 ‘빽’의 종류는 다양하고도 많다. 소속집단에 대한 동류의식이 강한 우리나라는 ‘저 ○○에서 왔어요’ 혹은 ‘저 ○○ 출신이에요’ 한 마디면 모르는 사람도 언니, 형, 동생이 된다. 특히나 돈과 권력이 많은 ‘부모 빽’이 있으면 그 자식은 세상 살기가 더없이 편해진다. 일반 수험생들은 정말 죽어라 공부해도 대학교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데다 재수, 삼수까지 하는 판국에 부모만 잘 만나면 힘들여 고생하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다. 물론 그 이후의 사회적 자리까지 보장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야.” 누구의 말처럼 정말 그게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능력만 믿고 어떤 노력도 안한다면 그 뒤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추락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 추락은 본인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도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 그 실체를 깨닫고 원래 있었어야 할 자리로 끌어내려 발생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빽’을 용납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뜨거운 불길을 만들어냈고, 그 불길은 매주 토요일 광화문의 촛불로 이어지고 있다.
100만 이상의 국민이 모여 다양한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대통령 하야’라는 한 가지 목표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혈연, 지연 등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썩은 뿌리를 뽑아내는 근본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것도 어찌 보면 ‘지연’의 일부였을 것이다. 처음 접근했던 의도가 어떠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둘이 친한 언니-동생 사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하던 것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친한 동생에게 정무를 공유하기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찌됐든 근본부터가 잘못됐다.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 어떤 연결고리만 있어도 그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순수한 정에서 시작한 행동일지라도 그 결과는 누군가에게 휘두르는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情)에서 비롯되는 공사(公私) 구분의 모호함이 사라질 때가 됐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더 이상 혈연을 바탕으로 한 작은 단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하나의 큰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성장한 사회의 크기를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가. 과거의 문화에만 머물러있으면 더 큰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한 만큼 지도층의 의식 수준도 발전해야 한다. 더 이상 ‘빽’은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가득 채운 촛불이 반짝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는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무섭게 일고 있는 촛불의 파도가 너무도 오래 썩어 그 악취 때문에 누구 하나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뿌리를 시원스럽게 함께 뽑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당하게 본인의 배후에 믿을만한 누군가가 있다고 자랑처럼 떠드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실력만으로도 떳떳하게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그 바람이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빽’ 말고 ‘나’ 믿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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