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대통령, 고개 숙인 대한민국
고개 숙인 대통령, 고개 숙인 대한민국
  • 맹은수 기자
  • 승인 2016.11.05
  • 호수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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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국민들에게 남긴 상처와 파장

‘유언비어’가 합리적 의심이 되기까지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은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좌절감을 안겨줬고 동시에 집단적 분노를 일으켰다. 아직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풀리지 않은 의혹이 많이 남아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의혹은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권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은 TV조선이 지난 7월 최초로 보도했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자금 출연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에 측근 비리 문제가 제기된 것처럼, 두 재단 역시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해 불법 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측근 비리 의혹 사건들은 적어도 소위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정·재계의 오랜 유착관계의 범위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기사에서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처음 등장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 벌어졌다.  해당 기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비선 실세인 최씨가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내용이었다. 한겨레의 보도로 비선 실세의 존재에 대한 의혹이 커져가던 도중, 지난 달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 속 기록을 통해 최씨와 박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공식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고, 민심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지게 됐다.
현재까지 언론보도로 밝혀진 정황에 비춰봤을 때 “박 대통령은 청와대 서열 3위일 뿐이고, 진정한 서열 1위는 최순실이다”라는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발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남긴 상처들
가장 큰 공분의 원인은 투표를 통해 뽑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에게 인정받지 않은 ‘일반인’이 국정 인사와 국가 사업에 힘을 발휘하며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커다란 오점이 되는 셈이다. 또한 이는 국민들이 믿었던 대한민국의 선출 시스템과 국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 또한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줬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정 전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나타내는 글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수장이 검증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매 연설마다 첨삭을 받고, 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읽었다. 그간 “혼이 비정상이다”,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 등 부적절한 단어 선택과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의심되는 연설문 내용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만큼 이번 의혹은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가 들었던 연설문은 누구의 생각인가”라는 의문과 배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임석찬<서울시립대 세무학과 12> 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된 모든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모든 사람, 단체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 같다”며 대학생으로서 현 시국에 대한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박 대통령, 고질적 불통의 이면에는 최씨의 존재를 가리기 위함도 있었나
차은택, 안종범, 고영태, 최순득, 장시호 등 최순실 게이트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언급된 사람만 수십 명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의혹의 중심에 공통적으로 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어떻게 여태까지 수많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한민국 서열 1위 최순실의 존재를 은폐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을 박 대통령 특유의 불통과 독재정권 시절을 방불케 하는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민 여론과 역행하는 공석에서의 발언,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자질이 의심되는 ‘모래알 속 진주 찾아내기’ 식의 인사는 예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 또한 메르스 사태, 세월호 사건 등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에 필요한 대면보고를 회피한다는 점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독대 증언 등 박 대통령의 개인적 폐쇄성 역시 이번 사태가 그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들에게 준 상처의 대가
최씨에게는 국가 기밀 유출 등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사항에 대한 교사 혐의를, 두 재단 설립과 관련해 배임과 횡령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국방사업에 대한 개입이 입증될 경우, 국방과 관련된 혐의까지도 물을 수 있다. 모든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최순실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공무집행방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뇌물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위반 △사기죄 △외교상기밀누설 △직권남용 공범 등 최소 8개다. 하지만 현재 검찰 측에서는 직권남용 공범, 사기미수 2개 혐의만을 적용하고 있다. 국민이 가장 분노한 ‘국정농단’에 대한 의혹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부인하는 이상 입증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탄핵과 하야가 주요 쟁점이지만 이 둘 중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공백과 혼란, 비용을 국민들이 감내해야하기 때문에 섣부른 선택은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이번 사태가 초래한 국정 마비를 타개하기 위해 특정 정파에 한정되지 않은 거국중립내각을 새롭게 구성했지만,  이 역시 과정에서 여야 간의 갈등으로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이 들끓자 지난 4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의 뜻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검찰의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어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질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국민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저점인 5%를 기록하는 등 현재 대통령의 대처로 민심을 수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대학생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을 돌아보면 학생은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항일 운동부터 민주화 운동에서도 그랬고, 대선에서도 대학생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 대학 여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동안 대학생 투표율이 최저점을 기록하며 대학생의 정치 무관심이 논란이 됐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보여줬듯 대학생의 정치 참여는 다시 상승세를 띠고 있다.
전국 각 대학에서 올라오는 시국선언문과 성균관대의 ‘시일야방성대곡’, 연세대의 ‘공주전’ 등의 풍자적인 글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는 대학생의 정치 참여 의지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으로 정치 참여에 무관심해지기보다는 우리 대학생의 관심과 행동 하나하나로 여론에 힘을 보태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행동하지 않는 지성보다 차라리 행동하는 우둔함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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